[장안생활] (1) 산호 님 이야기 예술인파견지원 - 예술로 사업  윤성희 

 

 

                                                                                                                                         

 

house hunting

 

기획의도: 서울에서 집을 소유한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노마드의 도시다. 부동산이 삶보다는 자산의 중심축이 된 사회에서 모두가 집을 소유하는 일이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에게는 ‘집’이 필요하다. 나의 존재를 보장하고 자리를 점유할 수 있으며 환대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다만 그것이 공간 자체로만, 소유나 독점이라는 방식으로만 성립되는 것일까? 노마드의 도시에서 공간은 어떻게 ‘집’이 되는가? 도시는 어떤 식으로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내는가? 그 질문과 관련해 ‘공유주택’을 선택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장안생활> 입주자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기획/집필/촬영: 윤성희

인터뷰 참여: <장안생활> 입주민 4인

후원: 무아레서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산호 님 이야기

 

 

여기는 몇 번째 집인가요.

스무 살 때 이후로 여기가 다섯 번째 집이에요. 처음엔 소형 아파트, 그다음에는 오피스텔, 원룸, 그리고 여기. 점점 방이 작아지네요. (웃음) 월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점점 비우면서 사는 게 좋기도 해요.

 

장안생활이라는 공유주택을 선택하신 이유는요.

작은 커뮤니티가 궁금해서? 여기 전에도 다른 공유주택에 살았어요. 비혼을 고려하고 있는데, 그건 나를 스스로 잘 키우면서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긴밀하고 좋은 이웃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선택했죠. 다만 그곳은 입주민도 많고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졌는데 난 서로 좀 더 침범당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곁을 어쩔 수 없이 더 많이 내 줘야하는 공동체가 궁금했어요. 그러려면 인원이 더 적어야겠다... 그런데 요즘은 또 좀 많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나는 나랑 맞는 사람들과 모이고 싶은데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다양한 사람이 많이 모여야 할 거 같아서.

 

이 공간에 자리 잡기 위해 가장 먼저, 또는 주로 하신 일이 있나요.

청소. 버리는 거. (웃음) 진짜 많이 버렸죠. 사실 여기는 내가 반드시 거쳐 가야겠다고 생각한 곳이기도 했어요. 진짜 지쳐 있었을 때였거든요. 내가 소유한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어요. 여기가 공유공간은 큰데 개인 방은 진짜 작아요. 여기 들어오려면 내가 가진 걸 좀 버려야 겨우 들어올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작은 방이 너무 좋은 거예요. 우선 다 비우고 그 빈자리에 내가 뭘 갖고 가고 뭘 채우고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시기라서 딱 맞았어요. 그냥 다 없다 생각하고 내게 꼭 필요한 하나는 뭘까 생각하면서 버리니까 너무 좋던데요. 그렇게 비우니까 다시 살아갈 힘이 났어요. 영점이 맞춰진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소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더 선호하고 있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적기 때문이거든요. 나는 그게 좋아요.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 거기서 편안함을 느껴요. 지금도 뭐 버릴 거 없나 하고 매일 봐요. (웃음)

그 다음에 방을 꾸몄어요. 전처럼 사람들을 들여서 공간을 보여주고 나를 소개할 수는 없어도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이런 걸 추구하면서 삽니다’ 하고 나한테 리마인드 시켜주려고. 침대 공간에 붙인 포스터들은 내가 꿈을 계속 꿀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꿈을 좇으면서 진화하는 과정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입니다.

지금 일을 하면서 사실 글도 쓰고 있거든요. 세상에서 단 한 가지만 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글 쓰면서 살고 싶어요. 계속 미루다 꼭 써야겠다 마음 먹고 공유주택에 온 것도 있어요. 다양한 맥락에 놓여 있으면 글을 쓴다는 저의 선택도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나는 다양함 속에 내가 놓여 있는 게 좋아요. 최근에 쓰던 글을 완결을 냈어요. 첫 완결작인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내 방에서는... 책상과 침대. 너무 당연한가?(웃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몰입, 그리고 휴식의 공간이죠. 집엔 이것만 있으면 돼요.

장안생활에서는 2층 무아레 서점이랑 1층 카페요. 사실 머무르는 곳은 압도적으로 방이고 여기 두 곳은 일주일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하긴 하는데요. 그래도 이곳들은 입주민들과 외부인들이 섞이는 곳, 안정성도 있으면서 새로운 물이 흐르는... 그런 밸런스가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서점을 좀 더 좋아하는데, 거기서 표방하는 키워드들을 보면 각자의 삶의 개별성을 인정해준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 걸 구구절절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서 은근히 풍기는 거 같아서, 그래서 그 공간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된다고, 내 삶의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응원을 받고 있다고 느껴요.

 

이곳은 거주지이지만 완전한 정착지는 아닌 거 같은데요. 정착에 대한 욕구는 없나요.

공유주택에서 살면서 너무 좋았어서 이게 내 새로운 생활방식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그건 건강할 때의 느낌이죠. 지치거나 약해질 때는 생각이 들죠. 나도 빨리 돈 벌어서 집부터 사야 하나? 그런데 그게 진짜 내 선택 같지는 않아요. 내 불안감을 좀 덜어줄 수 있는 방식 중 하나이지, 가장 옳은 하나의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공유주택이 꼭 정주하는 곳이 아니라고도, 꼭 거쳐 가야 하는 곳이라고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이게 어떤 적합한 주거의 틀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여기서 사는 건 그냥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요. 어떤 경우는 직장 근처,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에 사는 게 도움이 될 거지만 그게 또 내게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적합한가 생각하면 꼭 그렇진 않거든요. 좀 더 나이 들고 약해지면 안주를 하는 쪽이 좋겠지만 나는 아직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어느 한 곳에 딱 틀어박혀서 집을 마련해버린다는 것도 좀 그렇죠.

 

공간의 소유 대신 점유, 공유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현대엔 너무 당면한 과제가 많잖아요. 먹고사는 일 외에 추가로 뭘 할 여력이 좀 부족한 거 같아요. 그럼에도 그렇게 지치는 삶일수록 집이 변화를 일으키는 공간이 되지 않는다면 정말 아무 것도 하기 힘들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집이 동굴이 되고 내가 너무 오래 동굴 안에서 썩지 않으려면 지속적으로 외부에 내가 노출되어야 하는데 그게 내 삶에서 그냥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거. 그게 어쩌면 공유주택의 특징 , 그리고 그건 공간의 ‘소유가 아닌 점유’로 시작되는 것 같다고 느껴요.

소유하지 않는 것의 장점은 더 있죠.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나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 사적인 생활반경에 틈이 생기는 거, 반복되는 일상에 균열을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사실 사람 만나는 즐거움을 꼭 공유주택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요즘은 소셜링도 잘 돼 있잖아요. 집이 어디든 활발하게 소셜링을 하면서 살 수도 있죠. 근데 그건 내가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해요. 일반 집과 공유주택의 결정적인 차이라면 내가 어떤 상황이든 무조건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점 같아요. 주방에 물을 마시러 가도 누구를 만나게 되잖아요. 어디 모임 가면 뭔가 멋있는 얘기 해야 할 거 같지만 여기서는 그냥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다던가 일상적인 얘기들이 편하게 오고 가는 매력이 있죠. ‘집’이라는 공간에서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공유하게 되고 네트워킹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게 공유주택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독립성을 보장받고 싶은 마음과 외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나요.

정주하는 집과 공유주택이 뭐랄까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경험해보니 공유주택도 스펙트럼이 다 다르거든요. 집에 들어가려면 무조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곳도 있고, 안 만나려면 안 만날 수 있는 곳도 있고. 어떻게 보면 기존의 정주 중심의 삶과 비교적 변동성이 높은 삶 사이에 수많은 눈금들이 있는 거죠. 장안생활은 그 중간쯤 있는 거 같고, 그중에서 내가 어디쯤 자리할 때 가장 만족도가 높은지를 찾아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딱 이쪽 아니면 저쪽 이런 게 아니라 상호 비중을 어느 정도로 잡을지, 그에 맞는 집은 어떤 곳인지 고민하면서 접근해가는 과정. 거기서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면 그냥 지금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 그러면서 내 마음에 드는 눈금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산호 님 말씀대로라면 어쩌면 정주의 핵심은 ‘집’이라는 공간 자체보다는 그곳을 매개로 이뤄지는 어떤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네. 공유주택은 그냥 사람들이 콘텐츠인 공간이고, 그 사람들 때문에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나도 일종의 주거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내 일상에 만들어내는 균열이 좋아요. 제가 지나치게 고이지 않게 도와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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