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 무렵 발달장애 전문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과 만났다.
이들은 성인 발달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형태가 부모의 집과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에 한정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발달장애 자식을 둔 부모의 절박함을 이야기했다.
발달장애인이 성인이 되면 부모의 노화나 경제적 형편 등에 따라 자립을 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 성인 발달장애인이 혼자 힘으로 살 수 있는 집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엔젤스헤이븐은 장애인 가족과 함께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했고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동체 주택에 대한
꼼꼼한 설계안을 우리에게 가져왔다.
발달장애는 신체장애와는 달리 무장애 설계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자립을 위한 일정 기간의 케어와 훈련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웃들이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응 전략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을 남긴 첫 만남 이후로 엔젤스헤이븐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실행계획을 조금씩 구체화했지만 실현되지 못한 채로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20년 LH는 사회주택에 대한 추진 의지를 갖고 사회주택추진단이라는 전문 부서를 출범하였다. 사회주택추진단에서 LH형 사회주택 시범사업으로 추진한 공모가 ‘매입약정형 사회주택’이다. 이 공모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에 통상적으로 수행하던 두 가지 별개의 사업, 매입임대주택 사업 (매입을 통해 임대주택을 공급)과 사회적 주택 사업(매입한 임대주택의 운영을 사회적경제 주체에게 위탁)을 하나로 합친 점이다. 즉 아이부키와 같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주택을 기획하고 건설한 다음 LH에 매각하고, 운영 위탁을 받아 원래 기획대로 주택을 운영하는 것이다.
‘매입약정형 사회주택’이라는 새로운 구도는 불가능해 보였던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지은
매입임대주택에서 특수한 기획을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 민간 개발 시 높아지는 임대료 문제로 자유로운 운영이
어려운 문제 등이 쉽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다름하우스는 신축방식으로 진행되는 ‘매입약정형 사회주택’의 1호 사업이 되었다.
다다름하우스의 부지 선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복지시설 안에 위치한 엔젤스헤이븐 소유의 부지를 이용하면 지역공동체 안에서의 자립이 무색해지고 또 너무 멀리 떨어지게 되면 지속적인 지원서비스가 곤란해지는 상황이었다. 아이부키는 엔젤스헤이븐 근처의 땅을 매입했다. ‘매입약정형 사회주택’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엔젤스헤이븐은 아주 오랫동안 섬이었다. 주변에 집들이 없을 때도 섬이었고 집들이 생기고 나서도 계속 섬이었다. 지역 주민들이 갈 일이 없는 곳이었고 편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다름하우스가 지역 공동체 안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우선 이웃과 물리적으로 이어질 방법이 필요했다.
은평구 구산동의 다다름하우스 부지는 언덕 위에 위치했다. 아래쪽에는 엔젤스헤이븐이 있고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다다름하우스와 다른 주택들이 있는데 이 언덕길이 꽤나 가팔라서 주민들이 걸어 다니기 불편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이 불편함을 이용하기로 했다.
현재 대로변에서 다다름하우스가 있는 언덕 위의 동네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엔젤스헤이븐을 관통하는 길인데 그 길은(위 지도에 표시된 A) 엔젤스헤이븐의 주차장에서 끊어진다. 그 길을 다다름하우스와 엔젤스헤이븐의 경계(위 지도에 표시된 B)까지 연장하고 바로 그곳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다다름하우스의 지하1층이나 1층으로 나와 언덕 위의 동네로 쉽게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보통 건물을 지을 때 입주민을 위한 공용공간을 만들지만 지역 사람들이 그 공간에 들어오도록 설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다름하우스는 공용공간을 지름길이 되는 광장으로 내놓기로 했다.
다다름하우스는 서로 다른 공간을 잇는 광장을 품는다. 건물 내부의 중정은 주위를 둘러싼 개인 주거 공간을 이어주며 서로 관심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서로 독립된 생활이 가운데에 다다름으로써 개인은 공동체로 삶을 개방하면서 커뮤니티의 든든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가꾸어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일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을 만나는 불편함보다 언덕을 오르는 불편함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다다름하우스를 통과할 것이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입주민을 지나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데면데면한 만남의 시작은 결국 서로의 평범함을 깨닫게 할 것이라 믿는다. 다다름하우스는 광장의 중심에서 사람들과 소통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