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택은 기존 공공주택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는 동시에 혁신을 자극한다. 주거 공공성을 확장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한국 주택시장의 체질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
ⓒ시사IN 조남진. 운영 주체인 사회적기업이 기획·설계에 적극 참여해 만들어진 사회주택 안암생활.
호텔을 주거공간으로 바꾼 ‘아츠스테이 영등포’(서울 영등포동 소재)가 1월 중순 입주를 앞두고 있다. 청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총 51세대(청년 예술가 23세대, 대학생·사회초년생 27세대, 장애인 1세대)를 공급한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에 대비해 80% 수준이다. 지난해 말 입주한 ‘안암생활’에 이어 두 번째 ‘호텔 리모델링 청년주택’이다. 안암생활의 경우 토지와 건물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소유하고 설계·시공·운영은 사회적기업 아이부키가 맡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사회적기업 ‘안테나’가 같은 방식으로 LH와 손을 잡았다.
안암생활과 아츠스테이 영등포는 ‘사회주택’이다.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사회주택으로 기획되었는데, ‘호텔을 주거공간으로 바꾼다’는 점만 부각되었다. 애초 기획 취지와는 무관하게 ‘호텔 거지’ 논란으로 번지면서 사회주택이 무엇인지, 사회적기업들이 왜 이 사업을 함께하게 되었는지 하는 맥락이 가려져버렸다. ‘호텔 거지’만 남고, ‘사회주택’은 사라졌다.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사회주택(social housing)이 공공임대주택(이하 공공주택)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19세기부터 종교단체,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이 주거 문제 해결에 나섰던 전통에 따라 사회주택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예컨대 사회주택이 가장 많은 나라인 네덜란드에서는 주거 유형이 자가 점유(54%), 사적 임대(11%), 사회주택(35%) 등으로 분류된다. 반면 한국은 1989년에 정부 주도의 영구임대주택이 먼저 도입되면서 ‘공공주택’이 더 익숙하다. 2015년에 제정된 서울시 조례에서는 사회주택을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주거 관련 사회적경제 주체에 의해 공급되는 임대주택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한국에서 사회주택 하면 이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
한국에서 사회주택이 등장하기 전까지 공공주택 공급·운영 방식의 변화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1989년 영구임대주택의 도입이다. 투기와 전월세난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공공부문이 주거 문제에 처음 개입한 게 영구임대주택이다. 택지개발 후에 아파트 단지를 지어 장기간 임대했다. 그런데 도시 외곽에 위치해 직주 근접성이 떨어지고 여러 계층이 섞이는 ‘소셜 믹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낙후된 주거 공간이라는 낙인이 따라붙었다.
두 번째로 2002년 매입임대주택이 등장했다. 공공이 (직접 주택을 공급하지 않고) 도심의 기존 빌라나 신축 빌라 등을 사들였다. 택지개발·아파트 단지 위주의 주택 공급에서 벗어나 다가구주택 매입으로 저층 주거지의 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에서다. 도심 내 소규모 주택 공급이 가능해졌지만 부작용도 나타났다. 최경호 정책위원장은 “최소한의 품질만 지키면 공공이 전체 실적·물량을 채우기 위해 주택을 사들였다. 수요와 무관하게 짓는 경우도 있어서 공실이 많았다. 공공재정의 낭비다. ‘짓는 사람 따로, 사주는 사람 따로’이다 보니 주택관리가 어렵고 운영의 책임성이 떨어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주택관리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운영관리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기 시작했다. 영리조직뿐만 아니라 비영리조직에 운영을 맡긴 게 2016년 이후다. 이게 세 번째 시기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회적경제 주체가 주택관리뿐만 아니라 취업 멘토링, 창업 지원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했다.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운영 주체로 나선 것은 의미가 있는데, 커뮤니티 활동이 쉽지 않았다. 우선 커뮤니티 공간이 없었다. 예를 들어 20호짜리 빌라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려면 한 호를 비워야 하는데, 이에 대한 손실 보전 방법이 없었다. 기획·설계와 운영이 분리돼 생긴 문제다. 운영할 사람이 처음부터 기획·설계해 짓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사IN 이명익.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이 사회주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 가지 흐름이 만난 서울시 조례
그래서 2020년 ‘매입 약정-운영 위탁관리형’ 방식이 도입되었다. 안암생활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사회적기업인 아이부키가 기획·설계·시공(호텔 리모델링)하고, 토지와 주택(건물)은 LH가 소유하며, 운영을 아이부키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건설(Build)-매각(Transfer)-운영(Operation) 순서라고 해서 ‘BTO’ 방식이라고 한다. 안암생활에는 커뮤니티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다. 운영 주체가 기획·설계에 적극 참여하면서 커뮤니티 친화적 공간이 가능했다. 시설 운영의 책임성도 높아졌다. 최경호 정책위원장은 “공공과 민간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낸 사례로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공공주택의 단점을 해결하려는 대안적 시도로 사회주택이 등장했다. 이전에는 주택 공급자로서 민간과 공공밖에 없었는데, ‘민간·공공 협력형 모델’이 나온 것이다. 2015년 서울시에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었고, 2017년에 중앙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 ‘사회주택’이 언급되었다. 법제화에 앞서 사업 추진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경호 정책위원장은 ‘세 가지 흐름이 만나 서울시 조례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청년 1인 가구의 주거 문제가 부각되는 시기와 맞물렸다.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런데 청년 1인 가구는 기존 공공주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경제 주체를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두 번째로 민관이 협력하는 주거 모델 실험이 하나둘 성과를 보였다.
최경호 위원장은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지자체장 후보들이 빈집 리모델링, 홀몸 노인을 위한 맞춤형 임대주택 건설 같은 공약을 내세워 추진했다. 몇몇 사회적기업들이 이런 민관협력 사업에 참여했고, 성공 사례가 쌓였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의 역할이 더해졌다. 사회투자기금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에 금융지원을 한다. 서울시 조례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대안적 주택을 만드는 사회적기업에 ‘소셜 하우징’ 계정을 만들어 돈을 빌려주었다. 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마중물 구실을 했다. 청년 주거 문제 해결, 주거 관련 사회적기업의 성장, 사회투자기금의 역할 등 세 요소가 맞물렸고, 서울시 조례 제정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한국사회주택협회가 집계한 사회주택 수는 3810호다(2020년 12월31일·착공 기준). 점점 그 수치가 늘어날 전망이다. 최경호 정책위원장은 “사회주택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주택은 기존 공공주택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할 수 있고, 사회주택의 성공 사례는 공공주택을 자극해 혁신하게 만든다. 게다가 사회주택의 ‘부담 가능한 임대료’가 민간임대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거 공공성을 확장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한국 주택시장의 체질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