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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거지'의 반전..'공공임대주택'은 상품이 될 수 있을까

인구 주는데 1인 가구는 늘어, 청년 수요 맞춤형 주거 대안

2021.01.14 11:40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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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안암생활’ 외부 전경. 안암생활은 관광호텔을 개조한 1인 가구 공유주택이다. 아이부키 제공


서울 성북구 공유주택 ‘안암생활’은 애초 전세대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집값 폭등에 전세난까지 계속되는 와중에 호텔을 개조해 전·월세 주거로 내놓는다는 정부 발표만으로 입주자들은 ‘호텔 거지’란 비난을 들었다. 지난달 1일 관광호텔을 개조한 공유주택 안암생활이 언론에 공개된 뒤 ‘거지’ 운운하는 비난은 사그라들었지만, 일부 매체는 여전히 ‘1인 가구에만 적합하다’거나 ‘방에 부엌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전부 맞는 말이다. 안암생활은 1인 청년 가구를 위해 기획된 주택이어서다. 취사와 세탁은 공유공간에서 해결한다. 매 끼니를 사먹거나, 요리를 하면 여럿이 나눠 먹는 문화가 익숙한 청년세대에게 ‘키친리스(kitchen-less)’는 강요된 삶이 아니라 취향일 수 있다. 공유공간은 부엌이자 세탁실이고 거실이면서 앞마당이다. 지상 10층, 지하 3층에 122가구 주택을 만들면서 사업비 절반을 공유공간 2개층에 들였다. 주거의 일부처럼 여기도록 공간에 신경 썼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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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안암생활’ 내부 공유공간 중 부엌(왼쪽 위). 요리를 자주 하지 않는 청년 생활방식을 고려해 방에 부엌이 없는 만큼 공간을 확보하는 대신 시설이 좋은 공유부엌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부엌·세탁실 등 공유시설을 오가는 길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배치했다(오른쪽 위). 아래는 안암생활 공유공간 개념도. 13개층 규모 관광호텔을 주택으로 개조하면서 사업비의 절반을 공유공간 조성에 썼을 정도로, 이 공간을 주거의 일부처럼 느끼도록 신경썼다. 아이부키 제공

 

공유주택 자체가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민간시장에 공유주택은 ‘셰어’ ‘코-리빙’ ‘컬렉티브’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이미 많다. 546가구 규모로 세계 최대 공유주택이라는 영국 ‘올드오크’처럼 덩치도 점점 커져간다. 다만 안암생활은 이 같은 사적 공유주택의 흐름을 공적으로 흡수한 경우다. 사회적기업 ‘아이부키’가 공간 구성 등 기획을 맡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건물을 매입한 ‘사회주택’이다. 시세 150% 이상 월세를 받는 부동산시장과 달리 안암생활은 시세 45% 수준인 30만원 월세를 받는다. 기획은 민간이 주도했지만, 자본은 공공이 보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달 31일 만난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는 “공공이 아주 낮은 가격으로 주거를 제공했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안암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부키의 역할은 공간 제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커뮤니티 사무국’ 역할을 할 입주자 선정, 요리 등 관심사를 중심으로 한 참여활동 유도 등 공동주택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관리한다.

 

“청년들은 사회와 접점을 만드는 첫 단계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심을 갖는데, 일반 오피스텔 같은 주거나 직장에선 관계 형성이 쉽지 않죠. 안암생활에선 그런 데서 누릴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호텔 거지’ 논란에서 주목할 점은 부엌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1인 가구 증가 등 새로운 추세에 대응하는 다양한 실험을 했고, 안암생활 같은 결과물들이 공공임대시장에서 소비자 선택을 받는다는 점이다.

 

 

■‘정상가족’ 붕괴에 피어난 사회주택

인구 주는데 1인 가구는 늘어
청년 수요 맞춤형 주거 대안


“가족을 중심으로 한 주택 공급 체계는 붕괴됐다.” LH가 매입한 서울 노량진 고시원 건물을 사회주택으로 개조하는 현장에서 만난 김하나 ‘서울소셜스탠다드’ 공동대표의 말이다. 사회주택은 4인 가구 중심 주택시장을 1인 가구가 잠식하는 바탕에서 피어났다.

 

2020년은 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한 해다. 반면 최근 가구 수는 꾸준히 늘어 지난해 처음으로 2300만가구를 넘었다. 인구와 가구 수 추이를 정반대로 이끄는 요인은 1인 가구 증가다. 지난해 처음 900만가구를 돌파해 39.2%에 달했다. 4인 이상 가구는 2016년 25.1%에서 지난해 20.0%로 급감했다.

 

특히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로 불린 청년 1인 가구 주거 문제가 불을 댕겼다. 10명 중 1명꼴로 최소주거면적(14㎡)에도 못 미치는 집에 살지만 주거비가 저렴하지도 않다. 지난해 11월 서울시 조사 결과, 청년 1인 가구는 한 달 평균 124만원을 벌고 월세·관리비로 47만원을 지출했다. 소득 대비 주거비(RIR)가 38%다. 공공임대 입주자 모집 가점제도는 청년 1인 가구에 불리하다. 공적 제도와 사적 시장이 모두 외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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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운광산’ 외부 전경(왼쪽)과 방 내부. 다양한 크기의 창문을 지닌 각 방에서 고궁과 공원, 한옥이 들어선 동네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해 좁은 1인 가구 방이 가진 경계를 넘어서려 했다. ⓒSTUDIO texture on texture


이 영역을 사회적 경제주체가 파고들었다. 이윤과 투자를 제한받는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법인이 주택을 공급하고 공공이 이를 뒷받침할 때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2014년 아이부키가 기획하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매입한 금천구 ‘보린주택’이 선두가 됐다. 보린주택은 저소득층 독거노인을 위해 ‘유니버설 디자인’(단차 등 장애물을 두지 않는 설계)을 적용하고 옥상 텃밭을 갖춘 공유주택이다. ‘주거복지’에 ‘수요자 맞춤형 기획’을 더한 사회주택의 시작이다.

 

서울시는 2015년 처음으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는 사회주택을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사회적 경제주체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이라고 규정한다. 임대료 시세 80% 이하, 최장 10년 거주를 보장했다. 영구·국민임대 입주자보다는 소득이 높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70%(394만원 이하.3인 가구 기준)까지 포괄했다. 서울시가 장기 임대한 땅에 사회적 경제주체들이 지역밀착형 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은 “주택사업의 신용을 담보할 수 있는 공공과 지역 사정을 잘 아는 풀뿌리 조직의 역할 분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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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을 개조한 사회주택 ‘에어스페이스’ 2호 내부. 고시원에서 창문이 없는 ‘먹방’이었던 자리는 지금 입주자 공유거실로 바뀌었다. 어울리 제공


‘어울리’는 관악구 신림동에 고시원을 개조해 사회주택을 공급했다. 근처 대학을 졸업하고 지역 시민사회에서 활동한 김수정 대표가 운영한다. 김 대표는 “청년들이 많은 지역에 고시원·원룸 외 다른 주거 선택지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엔 스타트업 종사자를 위한 사회주택이 있다. 반려동물과 사는 1인 가구를 위한 동대문구 장안동 ‘캔자스대저택’ 같은 기획도 나온다.

 

이후 시흥시, 전주시, 부산시, 고양시, 경기도 등 8개 지자체도 사회주택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 2월 사회주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LH가 사회주택 선도사업을 추진해 맺은 결실이 안암생활이다. 21대 국회에선 올해 법제화 움직임이 있다.

 

 

■사회적 가치가 만든 ‘임대주택 상품성’

사회적기업·비영리 법인이
사회주택 공급, 공공이 뒷받침


하지만 사회주택 역시 공공임대주택을 향한 사회적 거부감을 피하진 못했다. 저소득층과 ‘뜨내기’를 꺼리는 시선이다. 서울소셜스탠다드가 2019년 궁정동에 1인 가구 사회주택 ‘청운광산’을 지을 때도 주변 민원이 빗발쳤다. 사회주택 공급자들은 주택의 ‘사회적 가치’를 알아주길 바란다. 아파트 중심의 주택시장화와, 빈곤층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공공임대 공급 속도전 사이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설 자리는 없었다. 김하나 공동대표는 “어떤 주택을 공급해 어떤 사회적 효과를 낳았는지 평가하는 지표도 필요하다”고 했다.

 

사회주택은 달라진 인구 구조를 반영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광서 대표는 “주택 수요가 다양해진 현실에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주택의 사회적 가치는 충분하다”면서 “올드오크가 이 같은 경향을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한 서비스를 만들었듯, 그런 차이가 바로 임대주택의 상품성을 만든다”고 말했다. 공공임대로서 공공성도 유지했다. SH도시연구소가 지난해 10~11월 사회주택 입주자 313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 달 평균 임대료는 32만원이다. 주거비 부담이 어렵다는 응답은 17.9%에 그쳤다.

 

품질과 디자인에 관한 눈높이도 높였다. ‘잘 짓고 잘 관리하는’ 주택은 고질적인 슬럼화 문제를 피해간다. 서울소셜스탠다드는 노량진 사회주택 작업을 하면서 규정이 허용하는 용적률을 최대한 써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른바 ‘집장사꾼’들이 지은 집처럼 대지를 가득 메워 저층 주거지의 답답한 풍경에 일조하는 게 꺼려졌기 때문이다. 개별 주택의 주차장인 필로티(기둥만 있는 1층)를 사회주택은 동네에 개방된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꾼다. 김 공동대표는 “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단지)를 살기 좋은 곳으로 치듯 동네에 사회주택 하나 있는 게 ‘이 동네 살기 좋구나’라고 여기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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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강변에 위치한 사회주택들. 프랑스 사회주택은 도시계획상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도시계획제도의 예외를 적용하는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파리시는 사회주택에 수준 높은 디자인을 정책적으로 유도한다. ⓒ최민아

 


■설 땅 없는 공공주택의 현실은 여전

품질·디자인으로 슬럼화 탈피
문제는 땅, 매입주택 활용 늘어


주택 공급의 핵심적인 문제는 결국 ‘괜찮은 땅’이다. 지난 5년 동안 서울시 사회주택의 공급 실적이 2000호가 채 되지 않는 것도 결국 땅 문제다. 아직은 공공이 보유한 자투리땅을 활용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중랑구 면목동 ‘도서당’은 450m 거리 주변 시유지 7곳에 사회주택을 지어 마을을 이루는 계획이다. 방치된 빈집도 활용한다. 다만 이렇게 확보한 필지는 대개 크기가 작아 공급량이 10~20호에 그치는 한계를 보인다.

 

‘공공임대를 위한 괜찮은 땅’에 대해 안암생활은 또 하나의 선례를 제시했다. 공공이 매입한 기존 건물을 ‘괜찮은 집’으로 바꿔 공급하는 방안이다. 이미 공공은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공공임대 물량을 충당해왔다. 더 이상 도심 접근성이 좋은 곳에 개발할 대규모 택지가 없는 상황을 감안한 대안이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발표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 방안’에서도 2022년까지 서울에 공급하는 3만5300호 중 2만6000호가 매입임대다.

 

이 매입임대주택에 민간의 맞춤형 기획을 더해 다양한 주거공간을 개발한 유형이 결국 사회주택이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매입임대주택이 동네에서 배척되는 현실을 바꿀 수도 있다. 안암생활은 기존 매입임대주택 물량만 적극 활용해도 주거문화를 바꾸는 선도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공공이 열어놓은 작은 공간에서도 오늘날 동네를 바꾸기 위한 상상력이 자란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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