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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사회주택, 복지 넘어 관계·즐거움 향해 간다

2019.09.10 11:18 /

[사회주택이 진화한다]
민관 협력으로 공동주택 조성해 공급
임대료는 시세 60~80%, 최장 15년까지
주거 부담 던 청년들, 주체적 인생 찾아
개인 공간선 나만의 생활 온전히 누리고
커뮤니티 공간, ‘주거 공동체’ 회복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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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하지만 환경은 쾌적하고 쫓겨날 걱정 없이 오래 살 수 있는 집. 무주택자들의 ‘로망’일 것이다. 여기에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이웃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최근 늘어나는 ‘사회주택’은 이런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등장한 모델이다. 비영리법인이나 사회적기업 등 민간 사업자가 공공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공동주택을 조성한 뒤,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사회주택 사업자들은 공공 소유의 토지나 건물을 장기간 빌리거나 공공으로부터 건물 건축과 리모델링에 드는 비용을 지원받는다. 사회주택의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으로 책정되며, 입주 기간은 최대 6~1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사회주택 공급에 불을 댕긴 건 서울시다. 서울시는 2012년 사회주택 공급을 위해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하고, 2015년에는 ‘서울특별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자금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서 서울시내 사회주택 공급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 102호(가구 수), 2016년 303호, 2017년 239호, 2018년 361호의 사회주택이 공급됐고 올해도 270호가 추가될 예정이다.

 

정부도 사회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 말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사회적경제 주체에 의한 임대주택(사회주택) 공급 활성화’를 정책 목표로 내세웠고, 올해 초에는 2022년까지 매년 사회주택을 2000호씩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사회주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토부는 사회주택이 공공과 민간으로 이원화된 주택 공급 체계에서 발생하는 주거 사각지대를 없애고 임대주택의 선택지를 넓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집 없는 민달팽이 신세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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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 조성된 사회주택들. ⓒ한준호·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시 사회주택플랫폼

 

현재 공급되는 사회주택의 입주 대상은 일반적으로 ▲무주택자이면서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70% 이하인 이른바 ‘주거 취약 계층’이다. 사회주택의 최우선 목적이 ‘주거 복지 향상’이기 때문이다. 신혼부부나 홀몸 어르신 전용 사회주택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주택은 20~30대 청년의 둥지가 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달팽이집 2호’와 ‘달팽이집 청년누리’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하 ‘민쿱’)이 서대문구, 서울시와 함께 조성한 사회주택이다. 집 없는 ‘민달팽이’ 신세 청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민쿱의 목표다. 달팽이집 2호는 2014년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5억원을 융자받아 마련했다. 4층짜리 빌라를 청년 13명이 2인 1실 또는 3인 1실 형태로 나눠 쓰고 있다. 입주민 송현정(32)씨는 “61㎡(약 18평) 2인 1실에서 보증금 60만원에 월세 23만원을 내고 살고 있다”며 “이 가격으로 밖에서 다른 집을 찾으려면 옥탑방이나 고시원 같은 ‘비주거’ 시설로 가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4월 입주한 정이든(23)씨는 “60만원이면 학생도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마련할 수 있는 예산”이라며 “달팽이집 보증금과 월세를 부모님 도움 없이 오롯이 내 힘으로 마련했기 때문에 제대로 독립한 기분”이라고 했다.

 

달팽이집 청년누리는 지난해 서대문구가 땅을 제공하고 포스코1%나눔재단에서 건축비를 지원해 지어진 5층짜리 집이다. 현재 18명이 살고 있다. 입주민 각자 6~12㎡(약 1.5~2.5평) 크기 개인 침실을 쓰고 화장실과 부엌 등을 공유한다. 침실 크기에 따라 보증금 450만~1060만원에 월세 7만8000~18만6000원을 낸다. 청년누리에 사는 이한솔(29) 민쿱 이사장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11년째 살며 반지하, 옥탑방, 학교 동아리방 등 다양한 주거 형태를 거쳤다”면서 “온전히 나 혼자 쓰는 공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공간을 가진 건 처음”이라고 했다. 청년누리 입주민 유한밀(28)씨도 “대학교 입학하면서 독립해 줄곧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며 “이곳에서는 같이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프라이버시도 지킬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주거 부담이 없어지니 인생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유한밀씨는 “달팽이집에 입주해 퇴사하고 다른 삶을 모색하는 사람을 7명이나 봤다”며 “월세 부담이 적어서 잠시 일을 그만둬도 크게 무리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정이든씨는 “계속 지인 집에 얹혀살다 처음으로 내 집을 갖고 나니, 인생을 좀 더 주체적으로 설계해나갈 수 있게 됐다”며 “주체적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2호의 1기 입주민으로 들어와 5년째 살고 있는 송현정씨는 “스무 살에 독립해 거의 매년 이사를 해야 해서 늘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며 “이 집에서 보낸 5년 동안은 이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서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됐다”고 했다.

 

 

입주민과 지역 주민이 어우러지는 ‘주거 공동체’ 실현

 

급격한 도시화로 무너진 ‘주거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도 공공이 기대하는 사회주택의 효과다. 서울시·시흥시·전주시와 LH 등이 사회주택 지원 사업을 시행하면서 필수 요소로 입주민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명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이웃의 정을 나눌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최근에는 사회주택에 보다 실험적인 커뮤니티 공간이 조성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문을 연 ‘홍시주택’은 1층 커뮤니티 공간을 ‘살롱’으로 꾸몄다. ‘로운쌀롱’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입주민 커뮤니티 공간이기도 하지만, 외부인도 시간당 1만2000~1만5000원에 빌려쓸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격주 일요일과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이후는 홍시주택 입주민만 로운쌀롱을 이용하는 ‘홍시데이’로 지정돼 있다. 일요일 오전에는 시리얼과 우유 등 간단한 아침이, 월요일 저녁에는 맥주와 주전부리가 제공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반상회도 이곳에서 작은 파티처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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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 독산동 ‘홍시주택’의 입주민 커뮤니티 공간 ‘로운쌀롱’ 모습. 파티룸처럼 내부를 꾸미고 외부인도 유료로 빌려 쓸 수 있도록 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로운쌀롱은 홍시주택 운영사인 사회적기업 ‘아이부키’와 금천구에서 공간 기획과 디자인 작업을 하는 청년 건축가 팀 ‘소정당협동조합’이 함께 고민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이광서(49) 아이부키 대표는 “입주민만 가끔 쓰는 공간이 아니라 늘 살아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사회주택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에 걸맞게 그에 속한 공간 또한 동네와 도시 풍경에 새로운 이야기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진경(32) 소정당협동조합 공동대표는 “입주민 커뮤니티 공간인 동시에 상업적으로도 쓰일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면서 “둘 사이의 접점을 고민하다가 살롱 형태를 떠올리게 됐고, 일부러 주택가 안쪽까지 사람들이 찾아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예약제 대관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입주민 이연경(30)씨는 지난해 12월 로운쌀롱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과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이씨는 “전시회 전에도 4개월 동안 로운쌀롱을 정기적으로 빌려 그림 그리기 모임을 진행했다”며 “입주민 혜택을 톡톡히 봤다”고 했다. 박선경(31) 소정당협동조합 공동대표는 “로운쌀롱은 일차적으로 홍시주택 입주민과 지역 주민의 공간”이라며 “지역에서 새롭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소정당협동조합이 로운쌀롱에서 금천구 청년들을 위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이러한 바람에서다.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입주민과 지역 주민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영화 상영회나 독서 모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주택가에 웬 살롱이냐’며 눈살을 찌푸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틈틈이 로운쌀롱과 앞쪽 주차장 공간에서 벼룩시장을 열기도 한다. 반응은 의외로 뜨겁다. 이진경 공동대표는 “행사 전날 저녁에 홍보 포스터를 붙였는데도 예상보다 많은 주민이 구경하러 와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주거 복지’ 넘어 입주민의 ‘취향’ 담는다

 

사회주택은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한 안정적이고 저렴한 임대주택에서 수요자의 생활 방식과 취향을 반영한 복합주택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이부키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지상 5층 규모의 반려견–반려인 가족 맞춤형 사회주택 ‘캔자스대저택’을 짓고 있다. 1층은 반려견 놀이방, 목욕 시설 등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하고 주거 공간에는 반려견 야외 세족 시설, 반려견 전용 양변기와 샤워기 등을 설치한다. 이광서 대표는 “그동안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으로 사회가 흘러갔다면 이제는 ‘다품종 소량생산’, 즉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여러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주택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의 새로운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모델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는 ‘스타트업 종사자’를 위한 사회주택 ‘앤스테이블’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앤스테이블 운영사인 소셜벤처 앤스페이스는 강남구에 스타트업 사무실이 몰려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수현(35) 앤스페이스 대표는 “강남권 원룸 월세는 70만~80만원 선인데, 아무리 잘나가는 스타트업에 다닌다고 해도 이 정도 주거비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출퇴근에만 2~3시간을 허비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에게 시세보다 20~30% 저렴하면서도 놀거리가 많은 매력적인 집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지하 1층과 지상 6층으로 세워지는 앤스테이블은 2개 층을 입주민을 위한 공유 사무실과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로 꾸릴 예정이다. 팝업스토어는 스타트업이나 공간 기획자들에게 단기 임대해 카페, 바, 전시장 등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민쿱은 서울시에서 임대받은 서대문구 연희동 땅에 입주민이 ‘건축주’가 되는 사회주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사회주택 건축주들 연희동 88-30’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공급자 중심 주택 시장을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수요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입주 희망자부터 활동가, 연구자, 지역 주민 등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열어 사회주택에 관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 이한솔 이사장은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수요자가 집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계해나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갈 것”이라며 “사회주택이 확산해 그 안의 삶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면 주거권, 공동체 등 주거를 둘러싼 사회 인식도 점차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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