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거지라니, 이만한 곳 절대 못 구해"..'호텔 주택' 실험 (2021.02.28)

전월세 주택 수요 상당 부분 1인 가구 급증에서 비롯
호텔 활용 임대주택, 위기에 놓인 호텔업계 살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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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여파로 장기간 공실 상태에 있었던 도심 내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한 서울 성북구 안암생활./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최현만 기자 = "호텔 거지요? 솔직히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거고 저는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서 신경 안 써요. 임대료는 싸고 방은 넓은 편인데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공용 공간을 예약해 면접 준비도 할 수 있는걸요."

 

정부가 호텔을 매입해 공유임대주택으로 내놓은 '안암생활' 입주민 유모씨(25)의 말이다. 보증금 100만원에 매월 30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다는 유씨는 근처에서 이 정도 가격에 절대 이만한 방을 구하지 못한다고 흐뭇해했다.

 

처음 안암생활과 같이 호텔을 개조한 공유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계획이 발표되자 큰 논란이 일었다. 해당 주택을 '닭장집'에 비유하거나 임차인을 '호텔 거지'라고 부르는 등 야권 정치인들 입에서 좋지 않은 말들이 오갔다. 안암생활이 외부에 공개되고 나서는 방에 세탁기와 주방이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도 이어졌다.

 

지난 23일 만난 안암생활에 실제 사는 입주민들은 하나같이 주방, 세탁기 등이 방 안에 없지만, 공용공간이 잘 갖춰져 불편함을 크게 못 느끼고 있으며 낮은 임대료와 질 높은 주거공간에 만족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작 이곳에 사는 입주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호텔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는 방식을 넘어 호텔 그 자체를 임대주택처럼 활용해나간다면, 전월세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텔'이 부동산 정책으로 적극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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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생활 내부 모습./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기숙사 부족 상황에 큰 도움…공용공간 잘 돼 있고 관리자 많아"

 

안암생활은 LH가 사회적기업 '아이부키'와 협력해 설계·시공 단계부터 참여한 시설이다. LH가 상업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새롭게 단장해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암생활은 고려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한성대학교가 1.5km 내에 있고 신설동역과도 500m 정도만 떨어져 있어 좋은 위치를 자랑한다. 이곳의 보증금은 100만원이고 월세는 27~35만원정도에 불과하다.

 

지방에서 올라와 약 5년 동안 자취하다가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 박모씨(26)는 "방 안에 세탁기나 주방이 없기는 하지만,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라며 "서울에서 이 정도 가격대에 이 정도 집에서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고려대 재학생 유씨 역시 "공용 부엌이나 공용 세탁기를 이용하는 게 불편할 수는 있지만, 오히려 그만큼 방이 넓어지는 측면이 있어서 좋다"며 "기숙사 추가 건립도 주민들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공간이 학교 근처에 많아지면 다들 많이 올 것 같다"고 했다. 역시나 고려대에 재학 중인 백모씨(21)는 "공용 주방은 시설이 워낙 잘 돼 있어서 웬만한 자취방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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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생활 공용공간 모습(아이부키 제공)© 뉴스1


안암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커뮤니티나 코워킹스페이스와 같은 공용 공간이었다. 이곳의 지상 2~10층은 주택이지만, 지하 1층과 2층은 회의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들로 채워졌다. 또한 앱을 통해 입주자들은 재능이나 경험을 공유하고 공용 공간에서 만나는 등 서로 역동적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유씨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이 살기에 좋다"며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같이 공부할 수도 있고 어플로 입소자들과 소통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백씨는 "저는 자주 활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입주민들을 보면 앱을 통해 서로 소통도 많이 하고 같이 활동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원룸 같은 경우는 관리해주시는 분이 주인이나 건물 관리인 정도인데 이곳은 주방 담당, 앱 담당, 내부 시설 담당 관리자가 따로 있어서 관리가 잘된다"고도 했다. 입주민들의 생활은 '닭장'이나 '호텔 거지'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백씨는 호텔거지라는 말에 대해 "저는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서 솔직히 그런 말을 들어도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호텔을 이용한 주거 공간이 1인 가구를 위한 것에 불과해 '전월세 안정화 방안'이 될 수 있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전월세 가격 상승의 상당 부분이 1인 가구가 늘면서 수요가 증가한 데 기인한 만큼, 1인 가구를 위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가구수는 2309만3108가구며 이 중 1인 가구는 39.2%인 906만3362가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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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임시휴업 중인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있다./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호텔 활용한 임대주택 확대해야…호텔업계도 살릴 수 있어"

 

전문가들은 호텔을 활용한 임대주택에 높은 가능성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호텔도 살리고 전월세 시장도 안정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특히 안암생활처럼 호텔을 매입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코로나19로 높은 공실률을 보이는 호텔과 잠재적 임차인들을 저렴한 임대료로 연결해준다면, 전월세 시장이 안정되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원철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안암생활처럼 호텔을 매입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매입해서 리모델링할만한 호텔 매물은 한정돼있기 때문에 호텔과 임차인을 싼 임대료로 연결해주는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며 "외국에서는 서비스 레지던스라고 해서 호텔처럼 서비스해주면서 1년 내내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의 주거 형태가 이미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텔에서 어떻게 사냐고 하지만, 이미 호텔에서 한 달 살기도 많이 하고 있다"며 "전세에 급하게 들어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한달에서 1년정도 호텔에서 충분히 살 수 있기에 전월세 안정화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서울시가 나서서 이같은 사업을 도맡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미 민간에서는 호텔을 임대주택처럼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시도되고 있다. 호텔에서 한 달 단위로 임대료를 내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호텔에삶'이라는 사이트에서는 호텔과 호텔에 장기투숙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있다. 사이트에 게재된 몇몇 호텔에서는 "강남, 판교에서 출근하기 괜찮나요?"라는 FAQ가 올라와 있을 정도로 호텔이 일상 주거공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민간 사이트에 등록된 호텔 수가 많지 않아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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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로 호텔 등 숙박업 경영난이 지속된 가운데 지난 1일 영업을 종료한 서울 서초구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호텔에서 관계자들이 호텔집기를 정리하고 있다./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이런 사업을 추진하면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 폐업을 앞둔 호텔과 실직 위기에 놓인 호텔 노동자들도 도울 수 있다. 최근 이태원의 크라운관광호텔, 서울 르 메르디앙 호텔 등 유명 호텔들이 줄줄이 매각된 상태다. 한류붐으로 2009년 말 136개에 불과했던 서울 시내 등록 관광호텔 수가 2019년 말 기준 460개로 크게 늘어난 상태에서 호텔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외국인 관광객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최 교수는 "관광업계 관계자 말로는 숙박비를 반값으로 받더라도 호텔이 꽉 차기만 하면 정부 지원을 안 받아도 고용인원을 유지할 수 있고 영업도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며 "내년이면 다시 관광객들이 들어올 테니 그때까지 호텔업계가 생존할 수 있도록 정부가 호텔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적극 나설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chm646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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