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럼] 의미를 버리고 흐름에 타라 (2014.05.23)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등록 : 2013년 01월 09일 (수) 21:10:09
최종수정 : 2013년 01월 09일 (수) 2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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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시대, 군주의 시대, 독재자의 시대에는 무리하게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 통제수단에는 대개 '위해'라는 의미부여가 따라붙는다. 사람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무척 어색한 일이기 때문에 그 어색한 상황을 수습하려고 '위해'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다 너희를 위해 이러는 거야." 

여전히 뉴스에 가끔 폭로되는 사건이 있다. 돈도 주지 않고 쉴 틈도 없이 일시키고 심지어 때리면서 평생을 부린 현대판 노비 이야기.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온 사람은 충분히 탈출할 수도 있었고 또 마음만 먹으면 부당한 취급을 폭로할 기회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화내지도 않았고 풀려나도 시원하게 고발하지 않았다. '위해'에 세뇌됐기 때문이다. 노비와 독재는 쌍으로 간다. 그들은 의미로 강하게 엮여 있다. '위해'로 관계를 무리하게 고정시켜놓았다. 관계는 일방통행이 되고 납작해지고, 사람은 죽는다. 

현대란 무엇인가. 의미의 해방이다. 군주의 시대, 제왕의 시대, 독재의 시대, 산업화의 시대에 억지로 갖다붙인 의미를 걷어내야 비로소 현대성이 드러난다. 의미는 나중이다. 나중된 것이 머리가 되면 잘못된다. 힘이 들어가고 왜곡되고 강제된다. '위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의미 중독이다. 의미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려 한다. 특히 누군가를 가르치려 할 때 잔뜩 힘을 준다. 힘을 주는 사람은 상대를 자신에게 종속시킬 무언가 필요하게 되고 그래서 의미를 지어낸다. 독재자는 발전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으며, 교사는 교육을 위해 폭력을 정당화 한다. 자본가는 경제를 위해  부도덕과 악행을 저지른다.

진리는 의미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생명도 삶도 의미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을 보라. 아이들은 의미를 좇지 않아도 하루종일 힘차게 놀고 잠들 때면 새 날을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의미는 강요를 합리화시키며, 강요는 사람의 에너지를 제한하고 점차 고갈시킨다. 천재는 교육 잘 받은 사람이 아니다. 가둬지고 길들여져서는 천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잘 분출해냈다. 현대는 말 잘 듣는 범생이 천 명보다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내뿜을 수 있는 천재 한 명이 더욱 요구된다. 

현대 예술가들이 애써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짓을 해온 데는 심오한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무 의미없는' 퍼포먼스는 군주시대·독재시대에 저항하는 절규이며 현대를 알리는 외침이며 치열한 진리의 대변이며 리얼리즘이다. 반대로 의미를 담으려는 예술은 지난 시대의 유물이며 현대성이 없는 죽은 예술이다. 현대성이 없으면 리얼리티가 없다. 

리얼리티란 대면이다. 사람을 통제하는 의미부여를 깨면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리얼리티는 바로 그 직접적인 접점을 가진다. 진정한 예술은 리얼리티를 담으며 관객을 끌어들인다. 작품이 비로소 관객과 만나고 작가가 벌거벗고 독자와 만난다. 반대로 의미를 실어서는 접촉을 하지 못한다. 위엄있는 담장을 둘러 가리고 왜곡한다. 통제하고 숨죽인다. 연결을 끊고 특수화한다. 수많은 기괴한 성채를 짓고 따로 산다.

 

리얼리티는 너른 마당에서 만나기다. 보편의 큰 강줄기에서는 수많은 의미부여들이 무색해지고 흐름이라는 에너지만 요동친다. 관계의 망에서는 모두 연결돼 있다. 이것이 이렇게 되면 저것이 영향을 받는다. 나비의 날갯짓이 허리케인과 연동되는 나비효과다. 양자역학에서 모든 존재는 관찰자와 연동돼 있다. 모두 연동돼 있어야 진짜다. 그러므로 시대가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역사가 나아갈 방향으로 나아가야 모두가 사는 길이다. 역사가 퇴행하면 이미 권리를 쥔 몇몇만 이득을 보고 나머지는 모두 죽는다. 함께 사는 길은 바로 의미를 버리고 진리의 결을 따르는 것이다. 

교육과 예술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면 그르친다. 자체의 맥락을 좇아야 한다. 고유한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이거다 하면 놓친다. 흐름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맥락을 연출한다. 매순간 정답은 단 하나며, 지나간 답은 폐기다. 눈을 뜨고 가슴을 열고 세계를 바라봐야 정답을 관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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