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럼]죽음은 없다 (2014.11.07)
 
[제민포럼]죽음은 없다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등록 : 2014년 11월 06일 (목) 20:56:02 | 승인 : 2014년 11월 06일 (목) 21:03:22
최종수정 : 2014년 11월 06일 (목) 20: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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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가 오랜시간 구명운동을 벌여왔던 이란의 자바리 Reyhaneh Jabbari가 결국 사형됐다. 그녀는 불과 19세에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사람을 죽인 혐의로 7년 복역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자바리는 자신의 몸-장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과 자신을 위해 꽃을 사지도 검은 옷을 입지도 말고 어떤 기도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올해 너무나 많은 죽음의 소식이 있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죽음의 소식은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죽음하면 슬픔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이 따라와 더이상 접근을 막는 검은 줄을 쳐놓는다. 그래서인지 '죽고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도 실제로 죽음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경우는 드물더라. 대개의 경우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 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듯 회피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태도는 평생동안 사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죽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문제들이 아무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되고 사람의 인격과 통찰이 성숙한다. 나는 단지 몸의 기능이 상실된 상태에 한정하여 죽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육체의 종말과 죽음의 본질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니까.

 

죽음은 삶의 종말이다. 이러한 본질로 보면 천국이나 윤회나 사후생에 대한 주장은 전혀 죽음을 다루고 있지 않다. 사후생, 즉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실제로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사후생에 대한 이론과 증언이 아무리 쏟아져도, 사후생이 실제로 있는지와는 별개로 그것은 모두 삶이라는 영역 내부의 이야기다. 삶의 외부에 있는 '진짜 죽음'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삶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바람을 반죽하여 사후생의 신화를 빚어낸다. 결국 모두 진짜 죽음을 회피하려는 제스쳐이다.

 

죽음은 삶의 외부이며 삶의 단절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경험될 수 없다. 모든 경험은 삶의 내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단절에 대한 수많은 경험에 기인한다. 이해받지 못하거나 분위기 파악 못해서 자신이 무시되는 작은 경험에서부터 배신이나 불합격 같은 경험 등 단절의 경험은 일상다반사다. 이것은 모두 '관계의 단절'이라는 불쾌한 경험이다. 실로 가장 큰 공포는 자신과 공동체와의 단절이며, 이것이 바로 죽음의 본질이다.

 

단절에 대한 공포는 자신이나 자신의 관계를 '대상화'하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관계는 대상화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는 '사건'이다. 관계의 단절은 단지 제한된 범위, 한정된 시간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이며, 실제로 관계는 단절되지도 끝 나는 법도 없다. 세상의 모든 사건은 서로 이어져 있으며, 세상의 모든 관계는 조금도 단절될 수 없다.

 

죽음의 공포는 결코 단절될 수 없는 영속적인 관계의 흐름에 놓인 실재하는 사건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해서 생겨난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공포도 역시 허깨비라는 것이 바른 결론이다.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특정한 목적에 한정시키는 순간 타자화·대상화시키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악마의 거래이며 죽음의 공포를 부르는 진짜 원인이다.

 

동서고금의 대가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추구한 길의 극단에서 삼라만상이 연결된 명확한 그림을 보았다. 때문에 그들은 두려움 없이 미지의 영역으로 진보할 수 있었다. 모두가 단절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간 사람들을 통해 인류는 중단없이 서로 이어짐을 확인하며 역사를 고쳐 쓴다. 

 

자바리도 대가의 길을 따랐다. 딱딱하게 굳어 인간을 옥죄는 사회와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성성한 눈빛으로 죽음의 공포를 넘어섰다. 그녀는 개인의 죽음을 넘어 이란 사회,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 화두를 던짐으로써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을 전달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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