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담론]가만히 있지 말라 (2014.06.04)
[시론 담론]가만히 있지 말라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 논설위원
 
  등록 : 2014년 06월 03일 (화) 20:21:36 | 승인 : 2014년 06월 03일 (화) 20:28:47
최종수정 : 2014년 06월 03일 (화) 20: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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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한국사람의 유전자에 두고두고 새겨질 해가 될 것이다. 이토록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슬프고 원망스럽고 분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울려퍼지던 바로 그 시간 그 곳으로 돌아가 "가만히 있지 말고 어서 나와" 단 한마디 소리 치고 싶다. 

석연치 않은 사후처리 과정을 통해 암묵적으로 합의해온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엉성한 실체가 생생히 폭로되고 있다. 거리로 나온 많은 시민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단 한 명의 아이들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국가입니까". 우리는 이제 '국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던 국가의 존재를 다시 정의해야 새 출발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주장 자체를 생소하게 여기거나 혹은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국가를 권력자가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전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우리 헌법이 규정하듯이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그로부터 나온다는 국가관이다.

민주국가의 사상적 근간은 '사회계약설(social contract theory)'이다. 사람들이 합의해서 국가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특정한 사람이나 세력이 만든, 즉 주인이 따로 있는 국가 개념은 폐기처분된지 오래다. 민주국가의 시민은 선거라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국가를 매번 합의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의사결정의 주체인 시민 자신이 존중받는 방향으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대전제는 결코 부정될 수도 없으며 부정돼서도 안 된다.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간 합의해온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다시 물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곧 불바다가 될 서울을 버리고 도피한 이승만의 입에서도, 독재자 박정희·전두환의 입에서도, 세월호 선실에도 울렸으며 앞으로도 우리 안방 TV와 신문을 통해 울릴 것이고 학교 교실에도 계속 울려댈 것이다. 물이 차올라도 다리가 끊겨도 방송만 믿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고물 배를 무리하게 운행한 선주인가 자기만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인가 무능한 해경인가. 따져 묻자면 모두 책임이 있다. 하물며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래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추궁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아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고도 '다 너희를 위해서 그런 거니 말 잘 들으라'고 윽박지르던 정치인과 교육자들, 그들을 옹호한 어른들이 이 살상에 동조한 자들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시키지 않은 어른들도 이 사태의 공범이다. 무엇보다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정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라고 그 막강한 권한을 위임한 것이 아니던가. 

이제 우리는 정신차려야 한다. 임금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하늘의 소리라던 그 시대는 이미 흘러갔어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의 마음에는 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왕을 죽여야 개인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시민이 깨어나고 이 사회를 더 살만하게 바꿀 수 있다. 왕을 죽여야 온전한 국가가 탄생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인류의 경연장에 오롯이 설 수 있게 된다. 깨어난 시민들이 손을 잡아야 '가만히 있으라'는 말도 안되는 명령에 맞설 수 있다. 세계 무대에서 당당하려면 먼저 왕을 죽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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