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契와 공존경제 (2017.01.31)

커먼스경제 구축을 위한 3가지 원리

나는 커먼스경제로의 전환이 착취적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현실적이고 인류애적인 접근이라고 보고 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 태스크래빗으로 상징되는 임시직 경제시스템이 공유경제라는 윤리적 포장을 하고 자본주의 이후 시대를 장악하는 미래가 도래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커먼스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자원의 생산, 소유, 운영 방식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기존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 볼 수 없었던 분산적 모델이 단계마다 응축되는 전환이 요구된다.

 

코스타키스(좌)와 바웬스(우) (사진 출처: CommonsFest)
코스타키스(좌)와 바웬스(우) (사진 출처: CommonsFest)

 

커먼스경제를 꾸준히 설파해온 마이클 바웬스(Michel Bauwens)와 바실리스 코스타키스(Vasilis Kostakis)는 커먼스경제 구성 원리로 3가지를 꼽았다. 커먼스 기반의 개방된 동료 생산과 커먼 오너십 그리고 연대 경제 모델과 같은 거버넌스 모델이다. 이들이 제시한 3가지 대안 원리는 자본주의와 커먼스가 공존하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에서 도출된 결론이었다. 예를 들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디지털 커먼스 풀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 혜택은 IBM과 같은 글로벌 기업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바웬스와 코스타키스의 3가지 제안은 이들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디지털 커먼스의 조성 원리, 소유 원리, 거버넌스 원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개방된 동료 생산은 디지털 커먼스의 구축 및 조성을, 커먼 오너십은 소유 원리를, 연대경제 모델은 거버넌스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바웬스와 코스타키스가 상정한 3가지 대안을 3가지 구성 원리에 따라 재구성하고 그것의 구체적인 구현 방식을 설명할 예정이다.

 


1) 디지털 커먼스 조성 원리

커먼스경제는 커먼스를 확보할 때 성립할 수 있다. 그것도 풍부하게 조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디지털 커먼스를 다룰 때는 조성의 원리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커먼스가 바다나 산처럼 자연환경의 형태로 주어진 물질재 영역과 달리 디지털 커먼스는 개인들의 협력으로 얼마든지 구축하고 확보할 수 있다.
리눅스는 개인들의 협력으로 조성한 디지털 커먼스의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리누스 토발스의 자발적 증여로 시작한 리눅스는 전 세계 수만 명의 리눅스 공동체 참여자들이 한 땀 한 땀 노력을 보태고 변형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2) 디지털 커먼스 소유 원리

디지털 커먼스는 사례 대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분산된 소유 구조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디지털 커먼스의 구축이 P2P 방식에 의존적일수록 소유의 집중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위키백과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위키백과를 최초 개발한 사람은 지미 웨일스이지만 현재 위키백과에 등록된 4,500만 건이 넘는 콘텐츠의 직접적인 소유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위키미디어 파운데이션이라는 비영리 재단이 존재할 뿐이다. 위키백과는 “아무리 편집 경험이 많고 공동체 내에서 명성이 높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특정 문서의 소유자인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단일 사용자의 노력만으로 구축된 콘텐츠가 아니기에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형태다.
소유권이 분산됐다고 해서 개릿 하딘이 언급한 ‘공유지의 비극’이나 마이클 헬러가 말한 ‘그리드락’이 현실화되지도 않았다. 소유권이 없기에 남용하고 파괴하는 부작용이 위키백과에선 나타나지 않는다. 혹여 나타나더라도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조정되고 있다. 공동체의 규율을 지키며 신뢰를 터득하는 방법을 위키백과 공동체가 스스로 정립해낸 것이다.


3) 디지털 커먼스 운영 원리

일반적으로 오픈소스와 같은 디지털 커먼스는 자발적인 개인들의 참여와 기여를 근간으로 작동하지만 권한 부여를 위한 엄격한 기준 설정을 통해 신뢰와 지속성의 시스템을 구축한다. 오픈소스 웹 브라우저 ‘파이어폭스’의 커뮤니티를 통해 그 일면을 확인해볼 수 있다.
파이어폭스에는 수많은 개발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코드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이 거대한 생태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엄격한 자치 규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소스 코드에 체크인하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400회 이상의 패치를 제공하고 1~2년은 자원봉사 개발자 경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파치 커뮤니티도 이와 비슷하다. 일정 수준의 커뮤니티 기여도를 누적하지 않으면 중요한 이슈에 대한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자발적 참여는 인정하되 중요 사안에 관한 의사결정을 위해 자격 기준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는 자연 자원의 커먼스 관리 공동체가 외부인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과 흡사하다.
대신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면 그 이후 관리 방식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공헌과 기여에 대한 보상체계로서 금전적인 요소보다는 존경과 명예와 같은 비물질적 자원을 더 강조한다.
 


“계”라는 우리의 관습과 경제제도

데이비드 볼리어는 “관습은 공유지의 법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커먼스가 역사적으로 로마 제국과 마그나카르타, 삼림헌장까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법적 토대를 갖는다는 맥락에서다. 현재의 법과 대화할 수 있는 매개도 실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관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조선은 건국 초기 산림정책의 기본 이념으로 ‘산림천택여민공리지(山林川澤與民共之)’를 제시했다. 산림과 천택(내와 못)은 일개 개인이 사적으로 점유해서는 안 되며 백성들과 더불어 이익을 나누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고려말 권세가들이 산림을 독점하고 백성들로부터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거나 세금을 강탈하는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 도입된 제도였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선의 산림에 대한 공리지(커먼스) 정책은 “계”와 결합하면서 “송계(松契)”라는 자치조직 혹은 자치제도를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송계는 관으로부터 입안(立案) 받거나 공동으로 매입해 배타적인 사용권을 확보함으로써 땔감(연료)과 퇴비의 수급을 안정적으로 도모하는 방편이었다. 송계의 전통은 1960년대까지 지속할 정도로 우리의 습관 속에 오랫동안 녹아있었다. 하지만 산림 자원의 상품화와 산지의 사유화 흐름 속에서 전통적인 계의 문화는 잊히거나 붕괴했고 그 자리를 자본주의의 독점적 소유체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송계는 디지털 커먼스의 운영 체계 나아가 새로운 경제시스템의 구성에 있어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시장에 의한 대체나 국가에 의한 개입이 아닌 공동체의 자율적 규범과 규칙으로도 얼마든지, 물질적, 비물질적 커먼스의 관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지 수백 년 이어진 전통과 관습이 극적으로 단절되면서 커먼스 관리에 대한 상상력을 우리가 잃어버렸을 뿐이다. 전통 공리지가 지닌 소유의 분산성, 자치적 운영원리를 디지털 커먼스의 운영 원리에 적용하는 것은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혁신적인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커먼스가 소유의 집중에 포획되면

반대로 커먼스의 소유권이 특정 기업 등에 집중화하면 폐해가 깊어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마리아DB와 MySQL의 대립 관계가 이를 잘 드러내는 사례다.
MySQL은 오픈소스로 공개돼 많은 이들이 선택한 데이터베이스 관리 소프트웨어였다. 리눅스, 아파치, MySQL, PHP 등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4인방을 묶어 LAMP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라클이 MySQL 개발을 주도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인수하면서부터 MySQL의 운명은 바뀌기 시작했다.
오라클은 MySQL이라는 디지털 커먼스를 사점하려는 욕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MySQL 커뮤니티는 서서히 약화했고 시장 점유율도 덩달아 떨어지게 됐다. MySQL 초기 코드를 개발해 커뮤니티에 증여한 마이클 몬티 와이드니우스는 오라클의 폐쇄적인 MySQL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며 마리아DB라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다시 개발하게 됐다.

 

현재 마리아DB는 위키백과처럼 비영리재단이 관리하고 있다. 여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처럼 개인 개발자들의 자발적 공헌에 따라 코드가 업그레이드되는 커먼스 기반 동료 생산 방식으로 운영된다. 오라클의 손에 넘어간 MySQL은 최근 들어 서서히 마리아DB로 대체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커먼스가 특정 기업에 의해 독점적으로 포획될 경우 가치가 감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경우다.

디지털 커먼스는 전언했던 3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최적의 사회적 가치를 발산한다는 명제를 이 사례가 방증하고 있다.

 

협력주의적 축적과 개인들의 공헌

다시 공유경제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오염되지 않은 표현으로서의 공유경제에 열광했던 것은 자본주의가 약탈한 행복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탐욕이 불러온 자원의 낭비와 소비만능을 내던져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함이었다. 착취와 계급의 갈등 속에서 잊힌 공동체의 정과 연대, 협력의 문화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인간을 부에 따라 편 가르고 상품으로 취급하는 저급한 의식, 자연을 착취해 자원의 마지막 한뿌리까지 갉아먹으려는 탐욕과 결별하려는 열망이 공유경제라는 표현에 수렴되어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오염된 의미로서 공유경제는 착취적 자본주의의 복사품일 뿐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처럼, 자원은 자발적 개인들이 공유하고 돈은 창업자 한 명이 벌어가는 불합리한 구조를 공유경제는 표상하고 있다. 우리가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에서 관찰했던 것들이다.

 

커먼스경제가 대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고, 역사는 다음 세대의 경제시스템을 기다리고 있다. 개방적 협력주의(Open Co-operativism) 방식으로 구현하든, 잉여이익을 커먼스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든, 디지털 커먼스를 살찌우고 그것의 이익을 공동체가 함께 공유하는 체계가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대안적 경제시스템이다.

전통 계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그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경제체제였다. 단 몇십 년의 시간이 망각을 낳았고 상상력의 부재를 불러왔을 뿐이다. 잠시 잊어버렸던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복원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 풍성하고 행복한 미래를 거머쥘 수 있다.

 

 

* 이 글은 슬로우뉴스의 기사를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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