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시대 (2016.09.17)

시민의 시대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입력 2016-09-13 (화) 20:04:58 | 승인 2016-09-13 (화) 20:11:00 | 최종수정 2016-09-13 (화) 20:05:56

 

 

시민은 현대의 인간상이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고 이끌어가며 비전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바로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민이 기반되지 않은 사회는 현대라고 할 수 없으며, 현대가 아닌 사회는 국가 경쟁력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의식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민사회의 가장 큰 주제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였으며,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시민의식은 주된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시간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었다. 승객이 갓난애를 안고 있어도 버스나 기차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웠고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고 싸워댔다. 시골 개울가에서는 기르던 개를, 더군다나 남의 집 개까지 잡아다가 몽둥이로 때려 불에 시커멓게 그을려 잡아먹는 일이 허다했다. 이런 사회에서 무슨 시민의식을 얘기할 수 있었겠는가.


이랬던 기억이 불과 30년 전이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과 같은 세계적인 행사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면서 시민의식이 극적으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세계인이 운집한 이 행사를 통해 비로소 '체면'을 차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세계라는 광장을 발견한 것이다. 실은 '중용(中庸)'의 혼자 있을 때도 신중하라는 '신독(愼獨)'은 개인적인 수양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는 덕목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 혹은 세계를 발견하고 의식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소인(小人)'의 '무기탄(無忌憚)'은 광장을 발견하지 못한 닫힌 세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니까 말이다.


시민은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이고 시민의식은 '공공(Public)'을 발견해야 가능한 것이다. 공공이란 광장이기도 하고 마을의 우물과도 같다. 마을 우물은 모두가 공유하는 '약한 고리'다. 모두가 한 우물로부터 이익을 나누지만 훼손되면 모두에게 해악이 돌아간다. 마을 우물을 대하는 태도가 확장되면 공공이다.


매너나 에티켓, 더 나아가 도덕성과 준법정신은 시민의 기본 덕목이다. 매너나 에티켓은 나와 남 사이의 선을 긋는 것이다. 경계를 그음으로써 비로소 더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해진다. 누이좋고 매부좋고 서로서로 얽히고 섥혀 경계에 대한 의식이 모호하면 관계의 밀도가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희미한 경계는 오히려 상대에게 다가가기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통의 질도 떨어뜨린다. 이번에 시행되는 김영란법을 통해 희미하던 우리 사회의 '선'이 새롭게 그어질 것으로 기대해본다.


시민의식은 복잡하게 얽힌 관계에 그어진 경계를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적극적인 상호작용에 대해 비전을 끊임없이 창조해야 한다. 이는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의 수평적 연대를 통해 가능해진다. 수평적 연대의 가능성은 바로 사회에 신뢰라는 고속도로를 구축하는 일이다.


마을길, 오솔길이 정감넘치고 좋지만 시민사회 전체적인 연대가 가능하려면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다. 사회 관계망의 고속도로는 신뢰에 기반한 사회적 경제 시스템의 구축 및 확장, 시민 자치조직의 확대 등을 통해 건설된다.


시민의식의 성장은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매몰되지 말고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구조적 안정성과 정합성을 갖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치와 외교 금융이 사회적 조직화 사업을 포용해나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이 문화를 공유하고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일에까지 이르러야 시민사회가 제대로 꽃피운다. 창조는 자부심을 주고 자부심은 더 많은 상호작용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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