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비극을 넘어 (2018.04.24)

[시론담론] 소유의 비극을 넘어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입력 2018-04-24 (화) 12:59:19 | 승인 2018-04-24 (화) 17:53:50 | 최종수정 2018-04-24 (화) 17:53:45

 

 
주택에 대한 사회 인식을 전환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단순한 정책을 넘어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와 맞닿아 있다. 일련의 시도 중에서도 사회임대주택과 같이 새로운 임대주택 모델을 발굴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살 만한 임대주택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는 임대주택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젖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데는 쉽게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돈 있으면 무조건 집부터 사고 보자는 강박증에 사로잡힌 시대는 점차 종착지에 다다르고 있다.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붇는 기형적 경제활동은 사회 전체의 창의성을 낮춘다. 집을 소유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보다 더 멋진 다른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삶의 동력을 잃어버린다. 이는 자본주의의 맹목적 질주와도 닮았다. 소유에 대한 인간의 집착 자체를 비판할 필요는 없지만, 소유의 목적이 모든 동기를 집어삼키는 구조적 문제는 직시해야 한다. 
 
생활의 근거지인 집은 삶을 펼치는 플랫폼이어야지 종착지인 무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살 만한 임대주택이 등장해야 하는 시대의 요구다. 좋은 임대주택이란 소유 중심의 기존 가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만들어내는데서 나온다. 욜로YOLO나 워라밸(일work과 생활life의 균형balance)과 같은 유행어에서 드러나듯, 젊은 세대는 집이나 재산의 소유라던지 학벌과 같은 사회의 외적 권위에 집착하기보다 삶 그 자체에 충실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가치관에 따라 집과 관계된 인식과 환경, 그리고 소비문화도 변해야 한다. 
 
혼자 사는 학생이나 직장인은 직접 아침밥을 해먹는 것보다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받는 편을 더 선호한다. 즉 그 편이 더 '경제적'이다. 또는 한 명이 직접 요리를 하기 위해 장을 보려면 시간과 재료의 낭비가 발생하지만, 남는 식료품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같은 처지에 놓인 이웃의 수요가 효율적으로 연결되기만 하면 이들은 협력적 경제를 작동시킬 수 있다. 단지 먹고 소비하는 생활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창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 개별적으로 제공받기 어려운 창업 관련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구매할 수 있으며, 독서, 애견, 영화 등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주체적으로 공유공간을 만들어가면 개별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공간복지를 구현할 수도 있다.
 
나아가 공동주택의 규모가 수백 세대를 넘어서면 훨씬 자족적인 경제 생태계를 구성하여 더 풍부하고 흥미로운 개인 간 거래를 창출할 수 있다. 애완동물 있는 사람은 해외여행 갈 때 이웃집 아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어린이는 이웃으로부터 수학공부를 배우거나 소규모 체험학습여행에 동참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활동이 '거래와 계약'의 형태로 사회경제적 가치가 만들어질 때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로컬 단위에서 스스로 작동하는 경제체계를 갖출 때 비로소 자치와 분권이 시작된다. 공론의 과정을 거쳐 자치 규약을 만들고, 공평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마을 관리자를 선출하며, 주민 생산과 소비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일부는 전체를 위해 적립되는 공동 경제가 작동하면서 지속가능한 자치구조가 이루어진다. 천 명이 사는 동네라도 그 안에 국가의 작동원리가 투영된다. 동네와 동네가 협력적 관계로 이어지면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구조가 된다. 한 동네의 생산품이 다른 동네에서 소비되면서 사회적 경제의 협력과 연대 모델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과 그의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는 오래된 경제학의 이슈다. 자본주의는 극단적 착취와 소유의 축적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왔다. 많은 학자들은 소유의 편중에서 오는 착취 스트레스의 구조적 누적은 심각한 이상현상의 원인이 된다고 경고해왔다. 다양한 이상현상은 패러다임 이동의 이행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중에는 새로운 질서로 위장한 기성 질서의 전략도 숨어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필두로 한 공유경제 벤처의 성공은 탈자본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바일화된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하여 기존 경제 체제에서 발현될 수 없던 개인의 자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 과도한 소유와 소비에 천착하는 기존 자본주의의 틈새를 개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유경제 벤처들은 대안이 아니라 '임시직 경제'(Gig Economy), 혹은 '네트워크 통치 자본주의'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자발적 참여자의 노동을 불안정한 상태로 내몰고, 반대로 시스템 관리자는 중앙집권적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기존 체제의 한계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공유경제 모형'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새로운 경제모형은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단절된 과거 마을단위 공동체 문화에서처럼 사회의 모든 요소가 긴밀하게 엮여 작동하는 것이다. 시민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고취시킨 민주주의의 실험과 성취를 흡수하고 SNS와 같은 모바일 네트워크의 확대, 그리고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처리 기술을 통한 개인화된 정보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최신의 성취를 반영하면 주류 경제의 한 영역을 대체할 사회적 경제 모형이 나올 수 있다. 
 
현재의 경제체제에서 거래와 계약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무수한 콘텐츠는 다음 시대에서 풍성한 자원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그것은 소유와 경쟁을 통해서만 동력을 구하는 초기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연대와 협력을 주축으로 한 사회적 경제의 기틀이 되어 주류 경제의 한 영역을 차지할 수 있다. 생산은 분산적으로 이루어지고 이윤은 독점되는 모순된 시스템의 대안이 되려면 한 방향으로 달려온 기존 경제 체제의 상실된 축을 일으켜세워야 한다.
 
그 중에서도 공간과 주거는 중요한 전제다. 공간에 공공성이 담기면 삶의 안정적인 토대를 만들게 되고, 그 토대 위에서 공동체의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그 가치사슬이 스스로 작동하는 경제체계를 작동시키면 지역 자치의 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이것이 투박한 소유 구조에 갇힌 초기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공유경제 모형이며, 다음 시대를 열어젖히는 비전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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