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주택 공급한다더니…‘개점휴업’
1호 베니키아 이후 ‘감감무소식’ 사업자 잇달아 고배, 프로세스 개선 필요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호텔 과잉 공급이 현실화된 가운데 서울시가 호텔을 주택으로 전환한다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1호 이후에 ‘개점휴업’ 상태다. 8일 서울시에 따르면 2018년 서울지역 호텔은 모두 440곳 5만8248실로 2012년 161곳 2만7156실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당시 중국 단체관광객들의 한국 방문이 이어지면서 정부가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까지 2016년까지 한시적으로 용적률 완화 등의 혜택을 주며 호텔 신축을 독려한 덕분이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사드 사태로 중국 관광객이 급감했고, 지금은 서울에서 면적이 가장 작다는 중구에만 100곳 가까운 호텔이 있을 정도로 공급 과잉 상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8년 유럽 순방 당시 도심 내 주택공급 확대방안으로 호텔과 업무용 빌딩을 주택으로 전환하는 구상을 내놓았고, 그해 12월 주택공급 5대 혁신방안에 포함됐다. 그리고 관련 기준을 마련해 2019년 5월 도심권인 동묘역 인근 베니키아 호텔 238실을 1호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만들겠다며 속도를 올렸다.
베니키아 호텔의 주택 전환 발표 이후로도 반 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 이후 호텔의 역세권 청년주택 전환 사례는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다. 호텔들의 경영난이 심해지고, 폐업하는 호텔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수요는 충분하지만 이를 정책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 역세권 청년주택과 같이 정교한 사업 프로세스가 짜여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각 개별 사례별로 용도변경 절차를 밟아야 하다보니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택 전환을 희망하는 호텔들은 대부분 특별법 적용을 받아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다보니 이를 다시 주택으로 전환하려면 용적률을 낮추지 않고선 용도 변경이 불가능하다.
주택과 호텔 사이엔 용적률 외에도 간극이 크다. 주차장법에 따른 의무 주차장 확보 면적이 대표적으로 차이난다. 상대적으로 적은 주차장으로 충분한 호텔과 달리 주택은 주거용도와 주거면적 등에 따라 까다롭게 주차장 면적을 적용받는다. 주차장 외에도 일조권, 대지 공지, 경계벽, 바닥 두께, 복도 너비 등이 요구되지만 용적률과 주차장이 결정적이다.
사회적기업 아이부키와 LH는, LH가 호텔을 매입한 후 아이부키가 리모델링해 민간 기숙사로 저렵하게 공급하고자 했으나 두 건 모두 관할 자치구 용도변경에서 막혀 답보 상태다. 181실인 중구 치선호텔의 경우 을지로4가역과 인접하고 중구·호텔 모두 호의적이었으나 HF에 리모델링 관련 보증 프로그램이 없어 매입비 마련에 난항을 겪었고, 용적률 등을 해결하지 못해 용도변경 절차를 통과하지 못했다.
성북구 리첸카운티호텔의 경우 지하철역 사이에 있어 현 역세권 기준엔 맞지 않지만 고려대와 인접해 민간 기숙사 수요로 충분했다. 처음 주택으로 지어져 2015년 호텔로 용도변경한 리첸카운티는 다시 주택으로 되돌아가려고 해도 용적률이 걸리면서 반려됐다. 리첸카운티호텔 119실과 치선호텔 181실만 합해도 300실의 청년 주거공간이 좌절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책적 필요와 현장 상황에 맞춰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에 포함시키거나 별도의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을 위해 종상향, 용적률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한시적으로 부여한 것과 같이, 호텔의 주택 전환 공급이 정책적 필요가 있다면 적절한 기부채납 수준과 용도변경 기준 마련 등의 제도 설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 건축사는 “호텔로 만들 때 받은 혜택을 호텔이 아닌 용도로 바꾸면 이를 기부채납하든 다른 방법을 정하는 제도가 없으면 주택으로 바꿀 수 없다”며 “다행히 역세권에 해당한다고 해도 HF에서 기금 지원을 못받으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LH 관계자도 “서울시가 아이디어를 얘기한 상황에서 방법적인 문제일 뿐 사업에 대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역세권 청년주택도 한시적인 만큼 서울이란 지역에서 필요하단 판단이 있다면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호텔을 주택으로 전환하는 사례는 베니키아호텔 외엔 없는 상황”이라며 “사업자가 용도변경하는 과정에서 용적률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개선 가능한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