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되자 (2019.03.12)

근대 이전에는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했다. 지배계층이 의사결정권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대는 대중의 의사결정 권한이 크게 확대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생활세계의 개인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실제로 얼마나 많이 주어졌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현대인들이 자본과 행정의 틈바구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독일의 현대 철학자 하버마스는 자신의 의사소통행위 이론에서 상호이해에 기반을 둔 의사소통의 합리성 회복을 통해서만 현대사회의 병리, 즉 시장과 행정적 권력에 포로가 된 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는 쉽게 말해 자본시장과 국가행정의 틈바구니에서 자아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현상에 대한 표현이다.

현대는 복잡성의 시대다. 권력구조가 과거와 달리 무척 복잡해졌고 그만큼 의사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수퍼히어로의 인기는 복잡다난해진 시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감에 대한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영웅은 전근대의 표상이다. 그는 곤궁에 처한 상황을 단칼에 정리하는 사람이며, 대중은 영웅이 드는 깃발을 보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현대라고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모두가 '현대인'은 아니다. 더러는 여전히 영웅을 그리워하듯이 독재자와 같은 제왕적 권력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며 더러는 의사결정을 회피하다가 모든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를 품지 못하고 현대인이 되지 못한채 스스로 유폐되고 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학교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곳이라기 보다는 공존을 익히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부족 단위 이상의 타인과 공존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사람은 비로소 현대인이 되는 토대를 닦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계몽주의가 통치 이념을 강하게 주입하면서 타락했지만 타인을 적대시 하지 않아도 되는 자질은 계몽적 과정을 통해 습득된다. 현대인이 되는 첫 단계라고 할 것이다.

현대인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그 다음 덕목은 도덕과 윤리 그리고 정의에 대해 아는 것이다. 예의를 배워야 한다. 예의란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하는 게 아니라 타인과 나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이다. 이것이 확대되면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게 해준다. 자신의 권리와 그에 대응하는 책임이 쌍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인을 완성시켜주는 최후의 덕목은 미학이다. 미학은 취향과 문화에 대한 감성이며, 더 나아가 완전에 대한 감수성을 말한다. 완전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대중이 바라보는 지향을 중심으로 반응성을 높이는 것이다. 현대는 복잡성의 시대이며, 권력의 구조와 의사결정의 기준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된다. 그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미학적 완성이다. 미학은 긴장하고 깨어서 흐름에 반응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정당한 합의를 끊임없이 새롭게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의원을 선출하는 것부터, 내가 사는 공동주택의 규약을 만드는 일, 그리고 다양한 거래의 방식을 규정하는 일이 모두 현대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국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현대란 전근대의 의사결정 독점구조가 재편되어 대중에게 그 권한이 확대된 시대이므로 현대인은 트렌드를 주도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시대의 뾰족한 지점에 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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