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함께 사는 도시, 생동감 있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2019.11.12)

'함께 사는 도시, 생동감 있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한겨레] [연속기고]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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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아이부키가 짓고 운영하는 도시임대부 사회주택인 ‘홍시주택’ 입주자들이 1층에 있는 로운쌀롱에 모여 입주자 모임 운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이부키 제공

 

독립한 청년 1인 가구 대다수가 고시원이나 원룸과 같은 방 한 칸짜리 공간에서 살아간다. 비슷한 구조와 규모의 옆방에도 같은 또래의 청년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잠만 자거나 잠깐 살고 떠나는 공간이라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이웃으로 교류하는 경우는 드물다. 세입자인 거주자들이 친한 관계가 되어 공유의 가치를 누리며 살아가는 주택을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인 ‘홍시주택’을 짓고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아이부키는 이런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한창 실험 중이다. 홍시주택은 서울시로부터 땅을 저렴하게 임대해 건축한 1인 가구 맞춤형 주택이다. 16명이 각자의 집에 거주하지만, 1층에 있는 ‘로운쌀롱’에서 월례회의도 열고 차 한 잔을 곁들인 소소한 문화생활도 누리면서 살고 있다. 입주자는 시세의 80% 이하인 저렴한 임대료로 10년간 안심하고 살 수 있고, 덤으로 한 지붕 아래 또래들과 같은 가족처럼 교류하며 지내는 소소한 즐거움이 일상이 된다.

 

불량주거지, 옥탑과 지하방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이런 집도 있어?”

주변에 홍시주택과 같은 사회주택 이야기를 전하면, 많은 이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들을 들으며, 도시의 대다수 주거 환경이 얼마나 포용적이지 않은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도시가 언제부터 이런 각박한 공간이 된 것일까?

 

근대 시민사회의 태동기만 해도, 도시에 산다는 것은 임금노동자로 편입되는 관문이자 신흥 부르주아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을 위한 기회의 땅에 진입하는 행위였다. 한국에서도 불과 20~30년간의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농촌의 인구는 급감하고 85.4%에 달하는 세계 최고수준의 도시화율이 달성됐다.

 

단시간에 인구가 집중된 도시는 필연적으로 기반시설과 적정 주거의 부족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규모 주거지 정비사업과 각종 도시계획을 통해 이 문제에 대응해 왔다. 하지만 주택공급의 양적 확대에 치중한 철거·재개발 위주의 정책은 원주민의 낮은 재정착율, 강제철거와 같은 수많은 부작용 속에 속도전의 양상으로 진행됐고, 그 결과 도시 공간은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재편되고 말았다. 모든 도시민이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부담 가능한 수준에서 점유·소유해야 한다는 정책적 이상은 뒷전으로 밀리고, 도시는 가난한 이들을 도시의 그늘 속에 있는 불량주거지, 옥탑과 지하방으로 거침없이 내몰았다.

 

포용도시의 관점에서 본 현실

 

유엔 해비타트는 20년마다 인간 정주회의를 개최하는데, 2016년 제3차 인간 정주회의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RTC)’를 새로운 도시 의제로 제시한 바 있다. 도시에서는 국적이나 성별, 나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적절한 공간에서 주거하고 활동할 권리가 있으며,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공공 공간이나 서비스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모두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가 핵심가치로 채택됐다. 이처럼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용도시, 회복력 있는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는 전 지구적 합의가 형성되는 지금,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올해 8월 등록 기준, 국내 주택임대사업자 중 개인의 최다 보유 등록 호수는 594채이고, 최연소 임대사업자는 2세의 영아이다.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구가 111만 가구에 이르며(2018년 국토부 주거실태조사), 고시원, 비닐하우스, 노숙 등 주택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가구가 37만 가구(2018년 국토부 주거실태조사)인 현실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무려 9.8배(2017년)로 나타났는데, 이는 10년간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내 집 한 칸을 장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로 한정하면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14.1년이 소요된다. 또한 이른바 ‘핫한’ 지역에서는 어렵사리 창업해 자리를 잡은 청년 창업자와 소상공인이 임대료 급등으로 인해 폐업하는 일을 쉽게 목도할 수 있고 교체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공원, 주차장, 교육, 문화시설 등 기초생활 인프라의 양극화 현상도 심각하다. 낙후된 저층 주거지와 뉴타운이나 신도시로 대표되는 아파트 단지는 거주여건 측면에서 큰 격차를 보인다. 국가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그 차이를 줄여보려 노력하고 있으나 막대한 예산에 더해 계층에 따른 주거지 분리가 가속화되면서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대부분의 도시 공간이 사유화돼 있는 상황에서, 사회 통합을 위해 중요한 공유 공간의 확보는 더디게 진행되고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거점을 만드는 정도의 접근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안정적인 주거, 공유 공간을 위한 과제

 

그렇다면 모두에게 열려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모든 시민이 각자의 소득과 재산 상황 내에서 부담 가능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는 실질적인 주거권 보장이 선행돼야 한다. ‘계약 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의 도입과 같은 적극적인 세입자 보호 방안이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발의된 ‘주택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41건 중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고 모두 자동 폐기될 위기 상황이어서 우려가 앞선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임대차 보장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난 변화는 선례가 될 만하다.

 

총 주택 수에 견줘 4.3% 수준에 불과한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 외에는 사실상 모든 주택이 시장에 의해 공급되는 상황에서, 사회주택과 같이 낮은 임대료와 긴 거주 기간이 보장되는 공익적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

 

이뿐 아니다. 도시에서의 안정적인 주거는 거주공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활권 단위별로 다양한 복지, 여가, 문화, 교육시설이 배치되어 삶의 질을 뒷받침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생활SOC 공급과 함께, 보다 체계적인 권역별 공간분석에 기초해 어느 곳에 살든지 간에 시민이라면 누구나 일정한 생활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사각지대 없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요구된다. 공공청사, 공영주차장,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곳만 이런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 자산화 공간과 사회주택과 같은 사회적 실험의 장도 시설 복합화를 통해, ‘함께 모이고 서로 돌보며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생활SOC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공간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몰려나는 소상공인도 당연히 포용의 대상이 된다.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공간

 

시민을 위한 공간의 확보는 기본적으로는 공공의 책임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운영의 지속가능성과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시민의 참여와 책임이 높아져야 한다. 공공주도로 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 공간을 무상 혹은 염가임대하는 방식만을 고수하면 안 된다. 시민 펀딩과 공적 융자로 건물 등 소유권을 지역조직이 갖고 다양한 활동과 사업으로 고용을 창출하면서도 자생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공간을 지향해야 한다. 지역에 기반을 둔 사회적경제 기업의 등장은 이를 앞당길 수 있다. 사회적기업이 지은 청년 사회주택 건물 1층의 마을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동네 문제를 논의하고, 엄마들이 설립한 협동조합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치매가 있는 어르신을 함께 돌보는 돌봄센터에서 노노(老老)케어가 이루어지는 미래를 상상해 보자.

 

토지와 도시 공간의 상품화를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제어하면서, 공유의 가치에 기반을 둬 주거와 생계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시민의 참여로 운영할 때, 비로소 도시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철관 나눔과미래 지역활성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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