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택 이야기 (2018.02.15)

사회주택 이야기
이광서. 아이부키(주) 대표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와 함께 사회주택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회주택은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주로 유럽에서 발달한 사회주택은 국가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살만한 임대주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돈 없는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임대료가 적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임대주택이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해왔으므로 공공임대주택도 사회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살만하다'는 뜻이 저렴한 임대료 뿐만 아니라 자존심과 품위를 지킬 정도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해지고 있다. 점차 공공임대의 대량 공급 방식으로는 시민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어렵게 된다는 뜻이다. 공급이 부족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늘려나가야 하니 차치하더라도, 다양해진 주택 소요에 대응하기에 공급 방식이 둔하고 공급주체가 제한적이다.(우리나라는 LH, SH와 같은 공기업이 대다수를 짓고 관리한다.) 이 정부의 주택 정책에는 공적임대, 공공지원임대라는 새로운 개념이 들어있다. 아마도 임대주택에 대한 변화된 요구를 반영하려는 정책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간 4만호씩 공급한다는 공공지원임대주택이 무엇일지 주목해야 한다. 이 사업에는 다양한 임대주택 모델이 들어있다. 역세권을 개발해서 청년들에게 공급하는 임대주택, 주민센터 같은 공공청사를 개발해서 남는 용적률만큼 공급하는 임대주택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담겼다. 여기에 주거약자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서 운영효율성을 높이는 모델도 있고 사회적경제에 의한 공급도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변화된 주택소요에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있고, 또 그러기 위해 다양한 공급주체를 양성하는 방향이 담겼다는 점이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면 임대주택이든 어떻든 좋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주거약자들의 처지를 가장 잘 아는 공급자가 세입자의 요구가 잘 담긴 집을 짓는다면 임대주택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움직임이 2010년 이후 서울 성미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2011년 마포구 성산동에 소행주(소통이있어행복한주택만들기)는 함께 살고 싶은 9가구와 함께 첫 집을 지었다. 물론 함께 집을 짓는 일은 쉽지 않다. 서로 다른 생각을 드러내고 갈등도 겪게 된다.

 

그러나 갈등을 넘어서 집을 짓게 되니 관계의 밀도가 깊어진다. 이런 경험은 더 많은 갈등을 다룰 수 있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함께 살면서 생기는 문제에 대응하거나 더 나아가 동네의 이런저런 문제에도 대응할 여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집을 지으니 집을 짓는 일은 시작일 뿐이다. 실제로 소행주의 주민들은 마을기업을 만들어 이웃을 넘어 동료로 발전하는 사례가 많다.

 

이처럼 집을 짓는 사람과 살 사람, 그리고 운영할 사람이 최대한 밀착되어 있는 것이 '맞춤형 주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회주택 전환기는 맞춤형 주거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금천구에도 2015년 차성수 구청장과 사회적기업 아이부키의 열정으로 홀몸어르신 맞춤주택인 보린주택을 전국 최초로 지었다. 이 주택이 시발점이 되어 서울시 여러 자치구에서 맞춤형매입임대주택이 생겨나고 있다. 은평구 국가유공자 맞춤주택, 성북구 청년창업 맞춤주택인 도전숙, 예술인 맞춤주택, 동작구 한부모가정 맞춤주택 등 다양한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조례(2015년)도 만들고 자체 기금도 조성하여 지금까지 400호가 넘는 사회주택 사업을 추진했다. 이렇게 공급자-수요자-운영자가 밀착된 맞춤형 임대주택모델은 서울시 실험을 근거로 국가 정책 사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맞춤형 주거가 실현되면서 우리 동네가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해보자.

 

가장 큰 차이는 사회관계망이 풍성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삭막한 빌라가 들어찬 동네에 함께 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생기고(서울시 사회주택은 공용공간 설치를 의무화 하고 있다.)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 집이 더 많이 생길수록 참여는 더 확대될 것이다. 소외된 이웃에게 다가가는 복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일이나, 우리 아이들의 장난감과 책을 나누는 일, 그리고 동네에 오래 살아오신 어르신의 장담그는 노하우를 나누는 일들이 생겨나고 전에 없던 다양한 관계망이 생겨날 것이다.

 

집은 우리 삶을 펼치는 플랫폼이고, 그래야 한다. 집이 개인의 소유물로 국한되거나 어쩔 수 없어서 임대해 사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망을 실험하고 펼쳐내는 플랫폼이어야 하는 것이다. 집이 소유의 최종 목표에서, 우리 삶을 펼칠 출발점이자 거점으로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주거문화에 맞춤형 주거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주택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스며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지난 정권을 퇴진시킨 광장의 촛불이 세계적 권위의 독일 에버트 재단이 주는 인권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민주적 참여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많은 참여는 사회를 바꾸고 환경을 바꾸고 우리 삶을 바꾼다. 우리는 풀뿌리부터 더 많은 참여가 가능한 맞춤형 주거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대의 과제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주거 플랫폼이 작동하면 이웃과 관계 맺는 창의적인 방식이 생겨나고,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며, 더 나아가 지역의 문제까지도 자치를 통해 성숙하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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