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가장 극적인 한류 드라마 (2016.06.09)

역사라는 가장 극적인 한류 드라마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입력 2016-06-08 (수) 18:16:50 | 승인 2016-06-08 (수) 18:18:03 | 최종수정 2016-06-08 (수) 18:17:32

 


한국인들은 좌절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언제부턴가 점차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마저 늘어난다는 소식에도 무뎌지고 있다. (2014년 OECD 저출산율 1위, 자살률 3위) 총성이 대기를 떠돌고 선혈이 눈앞에 뿌려지는 전쟁만 전쟁이 아니다. 태어나지 못하고 태어나도 살지 못한다는 지금 이곳은 필시 수라(修羅)의 어디쯤일 게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던 작은 싹은 어느순간 별을 삼키는 바오밥나무가 된다. 앞뒤가 꽉막힌 이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른 것은 어딘가에서부터 길을 잘못 든 탓이리라.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와 인간다움을 맞바꾸자는 솔깃한 유혹에 더이상 넘어가면 안 된다. 겉을 번지르르 치장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게 됐다고 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사회의 수많은 위선을 목도할수록 우리의 앞날은 빛을 잃을 것이다.


18세기 말 프랑스 시민은 무능하고 사치한 왕과 귀족을 옹호하는 체제를 타격했다. 까막눈 시골 소녀 잔다르크에 영감을 받은 프랑스 시민은 결국 혁명에 성공했고 이 일대사건은 줄곧 세계 시민의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이 여세를 몰아 프랑스는 그후에도 끊임없이 혁명을 시도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으로 유명한 1830년 7월 혁명도 있고, 1848년 2월 혁명도 있고, 넓게 보면 나치 치하 레지스탕스의 활동이나 1968년 68혁명 같은 일련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약자의 권(權)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거저 내준 경우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약관의 청년이 산화하자 사회 구조의 부조리함이 드러났다.


'메피아'라고 불리는 이익집단의 실체와 그들이 결코 쉽사리 자신의 권(權)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 노출됐다. 현명한 의사라면 수술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기득권은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 혹은 개별적인 사안으로 치부하는 방식으로 전체 시스템의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데 능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히 다른 문제로 덮어버리거나 해당 문제를 떠안고 심연으로 가라앉을 대체재를 찾아낸다.


세월호와 같은 큰 사건에도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크게 수술해내지 못하자 이번에는 시민이 직접 나섰다. 지난 4·13 총선은 분명 시민의 승리로 역사에 굵게 기록될 사건이다. 역사에서 다수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 바로 혁신과 혁명의 본질이다. 예전에는 시민이 승리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지만 이제는 피가 아닌 개인의 깨어난 선택의 결집만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게 됐다. 바로 투표의 힘이요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다.


우리 역사에도 도도한 시민 승리의 역사가 이어져오고 있다. 암흑과 같던 시대 임시정부가 있었고, 4·19, 5·18, 전태일에 영감 받은 수많은 노동운동, 6월 항쟁, 그리고 마침내 정권교체까지 이뤄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좋을 자랑스러운 시민의 역사다. 엄청난 억압에도 굴하지 않던 수많은 청춘의 피가 광장에 뿌려졌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 서있다. 수라의 어느 변방을 서성거리고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두꺼운 껍질을 벗어던지던 더 힘든 시절의 호기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신(神)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길 원해서 온갖 형상을 만들어놓고 꿈이나 환상을 통해 그 모습을 맞추어내는데 성공하고는 득의양양한다. 그러나 그렇게 드러나는 신은 가짜다. 신은 역사가 흘러가는 방식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민이 각성하는 현장, 정의가 승리하는 순간이 바로 신의 현현이다.

 

시민이 의사결정의 주체임을 인식하게 되는 일이 진정한 혁명이다. 세계의 각축장인 바로 이곳 한반도는 세련되고 품위 있는 방식의 혁신을 만들어내 다름 아닌 바로 역사 그 자체로 세계인들에게 가장 극적인 한류 드라마를 펼쳐보여야 할 것이다.

 

제민일보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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