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홀몸 노인, 주거부담 덜고 이웃 정 쌓아 (2016.12.26)

홀몸 노인, 주거부담 덜고 이웃 정 쌓아

경남형 주거 대안을 찾아서 (3)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하여 '아이부키'
서울 공공원룸주택 '보린주택'임대료 시세 30% 정도로 저렴 2년마다 재계약 최장 20년 거주
금천구청·사회적기업·SH 협력 독거노인 등 수요자 맞춤 설계 "지자체장 의지 있었기에 가능"

이동욱 기자 ldo32@idomin.com  2016년 11월 02일 수요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한 원룸 주택은 여러모로 눈길을 끈다. 먼저 깔끔한 외관 덕분이겠지만, 이 건물 이름과 이를 설명하는 문구에선 따뜻함이 느껴진다. '보린(保隣)주택,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사람 사는 세상'. 금천구청과 사회적기업 '아이부키(IBOOKEE)' 등이 함께 개발해 공급한 홀몸 어르신 맞춤형 공공원룸주택 1호점이다.

◇반지하 방에서 새 원룸으로 = 이 같은 보린주택은 금천구에 모두 4곳. 4호점은 올 초에 완공했다. 금천구에 사는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홀몸 어르신과 한부모가정, 조손가정이 보린주택에 입주한다. 시세 30% 수준 임대료로, 구청에서 생활안정자금으로 보증금 일부를 융자할 수도 있다. 입주 자격이 유지되면 2년마다 재계약할 수 있고, 최대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1호점은 평균 임대 보증금 1000만 원, 월 7만 원 수준으로 공급됐다. 매달 50만 원 수급비 중 20만 원가량을 반지하 월세로 내던 어르신들은 이제 새 원룸에 살면서 삶의 질이 나아졌다. 열악한 생활환경에 우울증과 고독사 등 사회적 문제도 있었는데, 어르신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며 이런 문제를 극복할 힘이 생겼다.

5층 건물인 1호 보린주택에는 홀몸 어르신 15가구와 한부모가족 1가구 등이 모여 산다. 2014년 말 준공해 지난해 초 본격적으로 입주했다. 이곳에서 만난 관리소장 이야기다. "보린주택 4곳 모두 저처럼 관리소장이 여성이에요. 매일 어르신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말벗이 되어드리기도 하고, 세금 납부나 병원 치료 등도 챙기고 있어요. 예전에 반지하 방에서 살던 어르신들이 햇빛도 많이 들어오고 곰팡이도 없는 공간에서 지내면서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얼굴이 좀 타면서 더 건강해진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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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수요자 발굴부터 설계까지 = '보린주택' 역시 지역사회 협력이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주택 터 매입과 설계, 건축 시행 등을 맡은 '아이부키'는 일명 '원룸의 할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홀몸 어르신 맞춤형 주택을 공급하는데,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다 지어진 건물을 사들이는 '매입형 임대주택' 사업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런 생각과 금천구 주거복지 사업이 결합하면서 '보린주택'이 탄생했다.

이를 위해 금천구와 SH는 협약을 맺었다. 건물 완공과 입주 완료 이후에는 SH가 원룸 주택의 중요 하자 보수, 금천구는 전반적인 건물 관리를 각각 맡기로 했다. SH가 임대주택 관리를 자치구에 맡긴 첫 사례고, 주택 입주자 선정 권한도 자치구에 넘겼다. 또 금천구는 지역자활센터에 주택 관리·운영을 재위탁했다. 이처럼 보린주택을 놓고 여러 기관과 업체가 힘을 모으게 됐다. 특히 금천구는 이 사업으로 서울시 자치구 행정 우수 사례, 주거복지 우수 사례 등으로 꼽히며 주목받았다.

'아이부키' 이광서 대표가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맞춤형 수요자를 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과거처럼 적당한 기준에서 수요자를 찾아 무작위로 입주하게 하는 형식이 아니라 지자체가 이미 파악해놓은 복지, 일자리 등 수요를 적극적으로 참고한 것이죠. 이러면 주택 공급과 수요가 어긋날 우려도 없어집니다. 지역에 밀착된 형태로 주택이 가장 필요한 계층을 발굴할 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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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부키' 이광서 대표./이동욱 기자

 

 

아울러 홀몸 어르신 맞춤형 주택이면 설계부터 달라져야 했다. 일반 원룸이나 다가구 주택이 아니기에 홀몸 어르신에게 꼭 필요한 장치를 설치하고, 그러면서 편안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예를 들면 낮은 층수 건물이지만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거나,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레 공동체가 형성되니 같이 모일 공간도 필요했죠. 무장애 설계로 미끄러지지 않는 타일을 골라서 쓰거나 문턱을 없애고, 현관 앞에 앉아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접이식 의자를 배치하고, 어르신들이 문을 오래 닫고 생활하면 환기가 어려우니 환기구를 하나 더 두고…. 이런 소소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겁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실제 수요자 생활 방식을 설계에 담았죠. 비록 규모가 크지 않은 건물이더라도 관리실을 두고 CCTV를 설치했고요."

◇"지자체장 의지가 중요해" = 지자체와 지역자활센터가 협력해 건물 관리나 운영이 잘되다 보니 임대주택이라는 이유로 자기 동네에서 내쫓으려 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 현상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더불어 살게 된 어르신들은 조금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에어컨과 TV 등이 있는 공용 공간에서 이웃과 소통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보린주택이 비교적 지역사회에 잘 스며들고 있다고 봐요. 그리고 건물 안에서는 어르신들이 함께 생활하고 교류하면서 공동체성이 살아나는 모습이고요." 이광서 대표 이야기다.

지자체와 아이부키 등에서는 '보린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고 싶어하지만, 우선 높은 땅값으로 터 확보가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또 어르신 생활 편의성을 높인 설계가 적용됐음에도, 이런 투자와 노력이 실제 건물 매입 비용에는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시행사 처지에서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공존하고 있지만, 보린주택을 지자체 주거 정책의 길잡이로 볼 수도 있겠다. 경남을 포함해 지역에서는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을까. "어느 지역이든 원도심을 비롯한 지역 재생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자체가 의지가 있어야 하고, 특히 지자체 안에서도 지자체장이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공무원들도 의지를 낼 수 있고 실무 차원에서 풀어낼 수 있죠. 저소득층 주거복지 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거나 그런 측면에서 정책사업을 펼친다면 보린주택은 충분히 참고할 만한 사례죠."

보린주택도 차성수 금천구청장 의지가 컸기에 관련 프로젝트가 날개를 달았다. "금천구에서 서울시와 SH로 같이하자고 공문을 보냈고, 관리와 운영까지 맡겠다고 책임지는 모습이었죠. 전국에 있는 어느 지자체든 매년 저소득층 주거와 관련한 사업을 펼칠 텐데, 주택을 개발하는 지역 업체나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과 연계해 관련 사업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지자체 예산 한계를 극복하려면 주택도시기금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수 있고요."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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