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生涯) 전반 사회주택의 모습을 그린다면
청년, 신혼부부, 장년의 사회주택 생활을 담다
2021.06.09 12:35 by 전윤서 기자
꿈을 찾아 한 발을 내디딜 때, 새로운 가정을 꾸릴 때, 노후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주거 문제'가 떠오른다. 만만치 않은 주거비, 수도권의 주택난 등이 그 원인이다. 이처럼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의 대안으로 사회주택이 등장했고, 일반적인 주거 형태에서 벗어나 사회주택, 공동체 주택에 살기를 자처한 청년, 신혼부부, 장년의 목소리를 담아 보았다. 생애 한 부분을 사회주택에서 보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으로 생애 전반 사회주택에 대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사회주택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 시민 출자자들과 동네 주민을 초대한 터무늬 있는 집 옥상 집들이. ⓒ박철우 이사장
■ 터무늬 있는 집, 청년주거 문제 세대 간 연결로 해결한다.
로컬엔터테인먼트협동조합 박철우 이사장(34세)은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터무늬 있는 집 1호에서 동년배 청년들과 3년째 거주 중이다. '터무늬 있는 집'으로 인해 주거 안정은 물론 지역을 터전으로 느끼게 됐다고 한다.
Q. 터무늬 있는 집을 소개해 달라.
터무늬 있는 집 1호에 살고 있다. 터무늬 있는 집을 세대결합 주거 운동이라고 말한다. 청년들의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출자에 나선 주거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기금을 토대로 임차보증금을 조성해 사회투자지원재단이 청년들에게 보증금을 지원했다.
보증금 1억 2천만 원으로 전세를 구했다. 우리는 연 2%의 사용료와 2%의 공동체 기금을 내고 있다. 한 달에 20만 원 돈이다. 4명이 부담하고 있으니 한 달에 주거비로 5만 원이 지출된다. 일반 공공임대주택은 소득이 입주 조건에 크게 작용하는 반면 터무늬 있는 집은 공익적인 활동이 입주 기준이 된다. 나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년, 혁신가가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준 셈이다. 출자자와의 네트워크도 있다. 실제로 같이 일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세대가 같이 융합되어 이슈를 해결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1호는 셰어형이다. 6명이 함께 입주했고 2명은 지금 꿈을 찾아 지역으로 떠났다. 로컬엔터테인먼트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터무늬 있는 집 희망아지트는 빌라 한 동이 공유주택이며, 70%가 일자리 때문에 지방에서 온 청년들이다.
Q. 터무늬 있는 집에 어떻게 입주하게 되었나.
원래 열댓 명 정도 되는 인원이 각자 집이었던 반지하를 중심으로 모임을 가졌다. 그러다 지역 활동을 하던 선배 소개로 터무늬 있는 집 주거 운동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구상 초기 단계였던 2017년 5월부터 약 1년간 당사자로서 설계에 참여한 계기로 입주하게 됐다.
Q. 터무늬 있는 집에 살고 나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경제적인 측면이 가장 크다. 반지하에서 살 때는 각자 한 달에 적어도 45만 원이라는 돈을 지출했다. 주거비로 지출이 적어지면서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됐고 취미생활을 할 여유가 생겼다.
청년들은 지역에서 주인이 될 수 없다. 5년 이상 한 마을에 정착하는 경우가 드물다. 마을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전에 이사를 해야 하거나, 저렴한 월세를 찾아 떠돈다. 지금 3년째 강북구에 살면서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도 주고받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드리고 반대로 우리에게 반찬을 나눠주기도 한다. 지역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가능한 관계다. 지금은 동네 자체가 삶의 터전이 된다고 느낀다.
Q. 앞으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위해 청년주거 운동 출자금이 더 많이 쌓였으면 한다. 터무늬 있는 집 1호도 전세금을 올린다면 바로 쫓겨나야 하는 신세다. 그리고 정보가 있는 사람만 공유주택에 들어오는 게 아쉽다.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위스테이 별내 아파트, 신혼부부에게 안정감을 주다.
청년연대은행 토닥,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부터 최근 추진하고 있는 청년신협 등 10년 넘게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활동해오고 있는 조금득 활동가(44세). 지난해 태어난 아이와 함께 협동조합형 아파트 위스테이 별내에 입주했다.
▲ 조금득 활동가는 지난해 태어난 아이와 함께 협동조합형 아파트 위스테이 별내에 입주했다. ⓒ조금득 활동가
Q. 위스테이 별내 아파트에 대해 소개해 달라.
국토부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아파트이다. 준비 기간만 3~4년 정도 걸렸고, 내부적으로 위스테이 별내 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들어져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초기부터 설립 동의자로 참여했다. 세대마다 한 사람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출자금은 4천만 원이다. 2020년부터 입주가 시작돼 491세대가 모여 살고 있다. 2억 원대의 보증금을 내고 들어왔고 평수는 24평 정도다. 남양주에 있어 서울로 출퇴근하는 젊은 사람이 많이 산다.
동네 책방, 체육관, 카페, 창작소,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 등 아파트 내부에 커뮤니티 공간이 잘 만들어져 있다. 월 5만 원의 커뮤니티 운영비를 내고 사용할 수 있다. 올해 협동상회가 생겨서 다양한 생협 제품을 구매할 수 있고 지역의 생산자들과 연결을 확대하고 있다. 8년 후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는데, 이를 조합 차원에서 구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고 따로 수익을 낼 방법도 구상 중인 것으로 안다.
▲ 위스테이 별내에 마련된 동네 카페와 협동상회. ⓒ조금득 활동가
Q. 입주하게 된 계기가 있나.
활동 마인드를 가지고 입주하게 됐다.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으니 고립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전에는 일반 월세에 살았다. 옆집과 왕래도 없었고 노후를 떠올렸을 때 외로운 삶이 될 것 같았다. 위스테이는 첫 번째 협동조합형 아파트라는 타이틀 자체에 끌렸다. 10년 넘게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끌림이었다고 생각한다.
Q. 한창 육아에 전념 중이라 알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육아는 어떠한가?
환경이 잘 마련되어 있다. 입주하자마자 돌봄위원회가 구축됐다. 아이들을 안전하고 잘 키울 방안, 환경을 만드는 데에 힘쓰고 있고 교육도 진행한다. 아직 아기가 어려 시설을 이용해보진 못했지만, 동네 카페 안에 키움 방, 자람 터가 있다. 엄마들과 아이들이 믿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다.
맘 단톡방도 있다. 공동구매도 진행하고 육아 정보도 나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 한 모금’이라는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다. 엄마들이 모여 고민을 털어놓고 힐링하는 동아리인데, 큰 힘이 된다.
▲ 위스테이 돌봄 위원회 설명회. ⓒ조금득 활동가
Q. 공동체 아파트에 대한 주변 인식은 어떠한가?
'공동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 있다. '개인 생활이 없고 다 같이 어울려야 하나'라는 인식이다. 나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사회적경제에 몸담으면서 공동체 활동을 해왔지만 반대로 공동체 활동에 지치기도 했다. 밀도 있는 공동체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막상 입주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따로 또 같이. 각자 생활은 하되 조합에 필요한 부분은 참여하는 방식이다. 또 직접 아파트에 방문해본 지인들은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해보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Q. 조금득 활동가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집은 안정감이다. 오랫동안 월세살이를 했다. 2년에 한 번은 옮겨 다녀야 했다. 특히, 이전에 집주인이 집을 파는 바람에 갑자기 이사해야 했다. 서러웠다. 주거지의 의미가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불안정한 느낌이었다. 안타깝게도 육아로 인해 쉼은 아니지만(웃음) 위스테이 별내 아파트에 살면서 전에 없던 안정감을 느낀다.
▲ 공동체 주택 여백 전경. ⓒ라이프인
■ 여백공동체 주택, "공동체 덕분에 노인병원 신세를 최대한 짧게 질 수 있을 것 같다."
명예퇴직 이후 65세 이상 일자리 사업인 돌봄 도시락 배달을 하는 민병권 씨. 오랜 기간 아파트 생활을 접고 아내의 권유로 공동체 주택 준비모임에 참여해 지금은 5년째 공동체 주택에 살고 있다. 함께 살면서 권위적인 아버지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Q. 공유주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아파트를 떠나 공동체 생활을 꿈꿨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은평구 사회적경제 허브센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 공유주택 준비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준비모임은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모여서 공유주택, 협동조합에 대해 알아갔다. 2015년부터 1년 반의 시간을 거쳤고, 2016년 8월 5일에 준공된 여백주택에 입주하게 됐다.
Q. 여백주택에 대해 소개해 달라.
여백공동체 주택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의 못난이 땅을 매입해 지었다. 입주 당시부터 10세대가 출자금을 내고 여백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북한산과 그 앞으로 흐르는 창릉천이 참 아름다운 주택이다. 여백주택은 파란여백과 하얀여백 두 동이 있다. 세대가 주택의 설계부터 참여해 집마다 설계, 구조가 다 다르다. 우리 가족에 가장 잘 맞는 집이 완성됐다고 보면 된다.
▲ 민병권 씨 집에서 바라본 북한산. ⓒ라이프인
Q. 지난 5년간 거주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옆집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산도 보이고, 앞마당도 보이니 훨씬 활동적으로 바뀌었다. 휴일이면 주택 주변을 거닐 생각을 한다. 진정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가 된 것 같다.
그뿐만 아니다. 아파트에 살 때는 언젠가는 더 좋은 집, 새집으로 이사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여백주택은 처음부터 ‘사는 집’으로 정했기 때문에 이사에 대한 부담 없이 지내고 있다. 여백의 작은 앞마당이 아파트 단지의 거대한 마당 부럽지 않게 한다.
땅도, 사람도 잘 만났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못 하고 있지만, 한 달에 한 번 밥상 모임을 한다. 별도로 마련된 커뮤니티 실에서 각자 접시에 먹을 것을 담아 함께 먹는 시간이다. 또 불필요한 물건들을 공유하는 이벤트도 있다. 소통하고 지내면서 이제는 속 깊은 얘기도 터놓는 사이가 됐다. 배우자가 먼저 떠나도 고독하지 않을 것 같다고 느낀다.
▲ 입주자들이 직접 가꾼 앞 마당. ⓒ라이프인
Q. 자녀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아파트에서는 서로 모른 체하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 도움을 구하기도, 청하기도 어렵다. 여백주택에서는 따로 살아도 같이 산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지난번에는 3층에 사는 입주자가 담석이 생겨 응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자녀들은 멀리 살고, 급한 일이 생겨 바로 온다고 하더라도 3시간이 걸린다. 집에 혼자 있었는데, 가까스로 집에 있던 아내에게 연락을 취했고 아내가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렇게 함께 사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있다.
Q. 함께 사는 것, 어렵지는 않나.
정원 가꾸기를 잘하는 사람,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 협상에 능한 사람. 10세대의 재능이 다 다르다. 그만큼 삶이 풍성해진다. 어린 자녀를 둔 3~40대부터 90대 노인까지. 세대가 다양하다는 점도 분쟁 없이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됐다. 처음 동네에 들어왔을 때 지역 유지와 만나고 관계 맺는 부분에서는 장년층이 나섰다. 반대로 장년층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다루기 힘들 때 젊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우리 세대는 자녀와 같이 사는 것이 불가능한 세대다. 길게 보자면 이 공동체 덕분에 노인병원 신세를 최대한 짧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이렇게 함께 살지 않았다면 권위적인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권위를 내려놓고 서로 조율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의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의 방식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설득하고 이해시키자'가 아니라 '의견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고, 수용하자'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어울려서 같이 살아갈 수 있겠구나' 했다. 집이 지어지고 5년간 한 세대도 교체 없이 살고 있다.
사회주택은 단순히 주거비 부담을 덜고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한다는 의미만 지닌 것이 아니다. 부동산 문제 해결의 주체로 시민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며, 잃어버렸던 공동체성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공간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나 자신을 위해 어떤 공간에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