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사] 나, 사회주택 산다 (2021.05.11)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아파트로 대표되는 도시생활은 화려하지만 한계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이웃과의 단절, 높아만 지는 비용은 우리 주거문화를 해치는 요소다. 사회주택은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이 ‘지옥고’에 살지 않아도 이웃과 어울리며 적은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실제 사회주택에 살고 있는 입주자를 만나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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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생활 공유부엌에서 김보리씨가 얘기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저는 모임 어디든 침투하는 '핵인싸'입니다. 어울리는 재미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텐 사회주택이 굉장히 좋은 공간입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장한평역 인근 장안생활에서 만난 김보리(25·여)씨는 작년 9월부터 장안생활에 살고 있다. 장안생활은 사회주택 사업자인 아이부키가 장안평 도시재생 활성화지역에 만든 코워킹(Co-working)·코리빙(Co-living) 스페이스다.
 
김씨는 장안생활 이전엔 은평구 갈현동에 있는 여성 전용 사회주택에서 1년6개월간 살았다. 벌써 3년째 사회주택에서만 서울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갈현동 생활을 마치고 다음 보금자리를 알아볼 때도 망설임 없이 김씨의 선택지엔 사회주택이 가득했다.
 
김씨는 “혼자서 원룸도, 언니랑 투룸도 살아봤어요. 원룸은 5~6평되는 방 안에 세탁기·주방이 다 있으니 답답했어요. 투룸은 너무 비싸고 청소랑 화장실 문제로 언니랑 트러블이 생겼어요.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찾던 중에 친구가 추천해주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택한 갈현동 사회주택은 셰어하우스 형태로 김씨에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알려줬고 많은 추억을 남겨줬다. 하지만, 딱 하나 결정적으로 김씨에게 필요한 개인공간이 너무 작았다. 결국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새 집을 알아보게 됐다.
 
장안생활에 김씨가 입주한 1인실의 실제 면적은 갈현동에 비해 1~2평 늘었을 뿐이다. 하지만, 주거공간 안에 화장실, 샤워기, 미니 냉장고, 넓은 수납공간을 모두 갖춰 김씨가 원하던 공간분리를 구현했다. 보증금은 올랐지만, 실제 김씨가 한 달에 내는 돈은 공과금과 관리비 다해 38만원으로 갈현동과 동일한 수준이다.
 
공유창고, 공유주방, 공유거실 등을 널찍하게 갖추고 있으니 더이상 원룸의 갑갑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갈현동에서 김씨가 가장 만족했던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장안생활에서도 또다른 형태로 이어가고 있다. 2일 점심에도 신입 입주민들과 함께 공유부엌에 모여 나베를 만들어 먹으며 신입주민 환영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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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생활 벽에 붙어있는 신입 입주민 환영회 게시물. 사진/박용준 기자

 


김씨는 “혼자 있고 싶을 땐 혼자 있고, 사람들 모여있으면 저도 같이 끼고, 식사도 같이 해서 먹으니 제일 장점이에요. 얼마 전엔 ‘영화벙(영화모임)’이 열려 중경삼림을 공유거실에서 봤는데 ‘저 사람 너무 멋있다’고 얘기도 하면서 보니 혼자 볼 때보다 더 재밌었어요. 그 전엔 운동공간에서 요가클래스도 열려서 전 잘 모르던 분야라 같이 껴서 했어요”라고 말했다.
 
장안생활의 특징 중 하나는 소통에 앱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입주민은 장안생활 앱을 사용해 자기소개, 불만사항, 건의사항, 모임 제안 등 각종 이야기부터 식료품을 낱개 단위로 판매하거나 공간 대여 신청까지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다. 장안생활 앱에서는 사이버머니 송이가 사용되며 게시물을 올리거나 댓글 다는 등에 활동을 하면 소정의 송이가 주어진다.
 
김씨는 “제 앱 닉네임은 ‘포비’에요. 앱에서 영화·따릉이·독서·요가 같은 모임이 열리는 거죠. 새 입주자가 오면 인터뷰가 올라와서 기존 입주자와의 연결고리도 되요. 전 앱을 많이 사용해 라면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도 나눠먹고 돈 버는 재미도 있어요. 계란이 특히 인기인데 한 판씩 사면 처치곤란한 계란을 1개씩 사서 요리할 때 사용하니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엔 장안생활 앱에 ‘짬짬이 퀘스트’가 올라왔다. 매니저가 휴가를 가면서 대신 일반 쓰레기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를 부탁하고 보상으로 모두 1만송이를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김씨가 잽싸게 자진해서 손 들었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미션을 수행한 후 인증사진을 앱에 올렸다. ‘분리수거나 음식물쓰레기를 잘하자’는 당부도 함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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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생활 앱에 짬짬이 퀘스트를 수행하고 김보리씨가 올린 게시물. 사진/장안생활 앱

 


김씨가 원룸에 살지 않고 갈현동 여성 전용 사회주택을 택한 이유 중에는 젊은 여성이 느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차단할 수 있는 것도 작지 않다. 장안생활은 남녀가 모두 들어올 수 있다. 혼성으로 어울리다보니 안에서 연애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어울림 속에서 이웃과 관계가 형성되면서 공포가 있던 자리엔 믿음과 안심이 대신 자리했다.
 
김씨는 “원룸살 때엔 초인종만 눌러도 무서웠다. 지금은 방마다 문고리에 지문인식 장치가 있고 4층부터 주거시설이라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일이 없다. 입주자 대부분이 인사 정도는 나누거나 얼굴은 아는 사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소리지르면 달려와줄 것 같아 걱정하던 부분에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부동산 소유만이 정답이라 여겨지고 가격이 폭등하는 시대, 20대 청년인.김씨도 “과연 제가 살 수는 있을까요. 남 일 같다”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곧바로 “여긴 현실적으로 적은 임대료로도 큰 공간을 누릴 수 있다.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큰 돈을 지불해 사는 것보다 이런 정도의 컨디션이면 함께 어울리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라며 현재 삶의 만족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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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생할 외부 전경. 사진/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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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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