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리모델링 청년 공공임대주택에서 '주거의 질'을 생각하다 (2021.02.25)

[서울&] [커버스토리] 공공주택사업자 주도형 사회주택 ‘안암생활’ 입주 100일

깨끗한 방에 코워킹·미디어실·회의실 등 ‘내 집’처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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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주택사업자가 주도한 호텔 리모델링 임대주택 1호 ‘안암생활’이 입주 100일을 맞았다. 20~30대 1인 가구 120여 명 입주자는 개인 공간과 공유 공간을 ‘내 집’처럼 이용하며 이전보다 생활 공간에서의 활동성이 높아졌다. 사진은 2월15일 커뮤니티지원팀 ‘코지’에 참여하는 입주민 4명이 회의 전 공유식당에서 방역수칙을 지키며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

 

추가 공급 미확정 속 “정부 청년 주거대책에 ‘질’ 반영돼야” 목소리

입주자, 커뮤니티 활동에 이웃 생기고

전용 앱으로 생활불편 풀어가는 등

“완벽한 주거공간 만들어갈 터” 다짐

 

 

2월15일 늦은 오후 청년 공공임대주택 ‘안암생활’ 지하 2층 공유주방 앞 테이블에 네 명이 함께 앉았다. 10여 평의 공유주방은 아일랜드 부엌으로 호텔 주방처럼 잘 꾸며졌다. 기본 주방 도구로 전기밥솥, 에어프라이어도 갖춰져 있다.

 

이들은 지난 연말 안암생활에 입주해 커뮤니티 지원팀 ‘코지’(COZY)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 앞서 라면에 만두와 어묵, 파, 청양고추를 곁들여 푸짐하게 끓여, 각자 덜어 맛나게 먹었다. 식사 뒤엔 설거지와 테이블 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자리를 떴다.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안암생활은 공공주택사업자가 주도한 호텔 리모델링 임대주택 1호다. 사회주택 아이부키가 2012년 준공한 옛 리첸카운티 관광호텔과 컨소시엄을 맺어 새 단장을 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이를 220억원에 매입했다. 아이부키가 위탁 운영한다. 사회적 경제 주체가 사회주택의 설계·시공에 참여하고, 다양한 주거서비스 프로그램 제공 등의 임대 운영을 맡는 ‘LH 민간 매입약정형 사회주택’ 모델이다.

 

지난해 11월30일 입주를 시작한 안암생활엔 현재 120여 명의 20~30대 1인 가구 청년이 산다. 입주민의 25%가량은 대학 재학생이다. 문화예술 창작자, 사회초년생, 취업·창업 준비생 등도 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7만~35만원, 관리비 6만원으로 13~17㎡ 크기의 개인 방과 공유 공간을 쓰며, 최대 6년간 살 수 있다. 주변 시세의 45% 수준이다.

 

개인 방은 복층형(56호)과 일반형(64호), 장애인용(2호)이 있다. 지상 2~10층 각 방에는 침대, 붙박이장, 냉장고, 개별 보일러 등이 갖춰졌다. 공유주방과 공용 세탁실은 지하 2층에 마련됐다. 공유 공간은 주거의 일부처럼 여겨지도록 꾸며졌다. 공유주방 앞 식당, 거실이 집처럼 이어져 있다. 코워킹, 미디어실, 메이커스실, 회의실, 카페, 창업실험가게, 바비큐 시설 등은 지하 2개 층과 지상 1층, 옥상 등에 있다. 옥상엔 테이블과 의자, 해먹 등이 있고, 북한산과 남산을 조망할 수 있다.

 

간단한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생활가게도 운영한다. 공유주방 앞엔 생활가게 진열장, 안엔 생활가게 냉장·냉동고가 있다. 70여 종의 식료품이 준비돼 있다. 무인 운영으로 정보무늬(QR 코드)를 찍거나 전용 앱 ‘안암생활’에서 공유화폐 ‘송이’로 결제해 산다. 요리를 자주 하는 입주민들은 3개월에 ‘5천 송이’를 내고 공유주방의 냉장고·냉동고를 한 칸씩 나눠 쓴다. 코지팀원들은 “주방이 분리돼 있어 방을 깨끗하게 쓸 수 있고, 원룸에선 냄새 때문에 못 먹었던 고등어나 삼겹살도 마음 편히 구워 먹을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3월 초 입주 100일을 앞두고 <서울&>과 만난 코지팀원들은 “무엇보다 저렴한 월세로 깨끗한 방에 여러 공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입 모아 말했다. 창업 준비생인 김하빈(25)씨는 “보증금이 100만원이라 부모님에게 손 내밀지 않고 새둥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주거가 안정되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뭔가 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겼다”고 했다. 온라인 쇼핑몰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김씨는 “제품 사진을 찍으려 스튜디오를 빌리면 대여료 부담도 큰데, 미디어실에서 바로 작업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공유공간을 공유화폐로 결제하고 ‘내 집’처럼 편안하고 편리하게 쓴다”며 “이 월세에 이런 생활은 꿈도 꿀 수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창업을 준비하는 심동화(25)씨는 “자고 쉬는 공간과 활동하는 공간이 구분돼 좋다”고 했다. ‘카공족’이었던 그는 카페 대신 24시간 여는 무료 코워킹 공간을 이용하면서 커피값도 많이 아낄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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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생활 공유주방에 있는 냉동고에서 입주민 2명이 만두를 꺼내고 있다. 입주민들은 전용 앱 ‘안암생활’에서 공유화폐 ‘송이’로 산 식료품을 냉장고·냉동고 개인 칸에 보관했다가 요리할 때 사용한다.
 

대학 재학생인 정서형(22)씨도 “취사나 세탁 등 생활에 필요한 건 공유 공간에서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창작에 관심이 많은 그는 “새 방이라 더 깔끔하게 쓰게 되고, 취향대로 꾸미며 살 수 있다”며 “공부하다가 답답하면 공유 공간을 이용할 수 있어 원룸 때보다 훨씬 활동적으로 산다”고 했다. 최지우(25)씨도 조명과 음향 시설을 갖춘 미디어실에서 작품 사진을 찍고 코워킹 공간을 자주 사용한다. 그는 “생활 공간에 이런 시설이 있어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한다”고 했다.

 

전용 앱 ‘안암생활’에서 입주민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앱에는 안암생활, 생활가게, 나의 생활 세 코너가 있다. 안암생활 코너엔 입주민 ‘안암즈’의 100일 살이 깨알 기록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면 커뮤니티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소소한 비대면 활동이 이어져왔다. 안암즈들은 자기소개, 입주민에게 인사하고 소감 나누기, 공유 서가에 자신의 책 공유하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법, 언택트 운동·비법 공유, 새해 첫 끼니 인증사진 등을 필수 과제(퀘스트)로 올린다. 퀘스트는 입주민들이 투표로 결정해 진행하고, 수행하는 안암즈에게는 일정 기준에 따라 공유화폐 송이를 나눈다.

 

앱엔 거의 매일 나눔의 글이 올라온다. 먹거리·생활용품·재능·정보 등 나누기가 일상이 돼 있다. 김하빈씨는 부모가 보내준 귤을 앱에 올려 나눴다. 김씨는 “음식이나 식재료를 나누면서 이웃도 생겼고 정도 느낀다”고 했다. 정서형씨는 “설 선물로 받은 찹쌀떡을 나눴는데 안암즈들의 감사 인사에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했다.

 

생활의 불편을 알리고 풀어가는 내용도 꾸준히 올라왔다. 소음, 외풍부터 공유주방, 공용 세탁실 이용에서 겪는 문제점에 대한 의견들이다. 관리비, 가스비 등 공과금에 대한 문의도 올라온다. 비교 기준(기숙사, 원룸, 오피스텔 등)에 따라 안암즈마다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최지우씨는 “층간, 옆집 등 소음 민원이 많아 밤 12시 이후는 소음을 내지 않기로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 뒤로는 소음 민원은 거의 사라졌다”고 전했다. 코지팀원들은 “초기 시행착오를 거쳐 자리 잡아가는 과정으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공유 공간 운영은 시스템이 갖춰지면 애초 계획대로 지역 주민에게도 열 계획이다.

 

안암생활은 입주민이 운영진으로 참여한다. 커뮤니티지원팀인 코지가 지난해 연말 구성됐고, 올해 초엔 공유주방 주말 위생팀이 2명으로 구성됐다. 현재는 메이커스 공간을 사용할 메이커들과 운영할 공방장을 모으고 있다.

 

코지팀원들은 방역수칙에 맞춰 작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정씨는 “안암생활은 커뮤니티 활동이 장점인데 코로나 때문에 활발하게 못 하는 게 제일 아쉽다”며 “메이커스 공간에서 소규모 강의를 여는 등 입주민들 재능을 서로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부키의 이광서 대표는 “공공이 아주 낮은 가격으로 주거를 제공하고, 입주자는 그 이상의 뭔가를 안암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주거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공동체 활동이 많아져야 한다”며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공성 측면에서 볼 때 비용에 대한 공공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지팀원들은 안암생활 같은 청년에게 힘이 되는 주거정책이 더 많아지길 기대했다. 김씨는 “1~2년마다 이사하는 ‘강제 노마드’로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보증금 100만원, 6년 거주 보장은 든든한 지원이다”라고 했다. 정씨 역시 “기숙사 수용률이 전교생 1%밖에 안 돼 어쩔 수 없이 자취해야 했다”며 안암 생활이 점점 더 좋은 거주 공간이 될 거라 자신했다. 최씨와 심씨는 “다른 사람에게 주저없이 소개할 수 있고, ‘거기 완벽한 곳이잖아’라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 2·4 부동산 대책에 따라 국토교통부와 LH가 비주택 용도 변경을 통해 올해 6천 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안암생활 같은 LH 민간 매입약정형 사회주택의 추가 공급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기획과 시공에 참여한 사회적 경제 주체가 운영을 맡는 사회주택 방식은 공급 목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다. 한 관계자는 “정부의 청년 주거 대책에 주거의 질이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며 “더 많은 ‘안암생활’ 공급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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