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무지와 편견이 만든 '호텔 거지'라는 거짓말 (2020.12.24)

12월1일 '공공임대주택으로 바뀐 호텔'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취재진의 분위기는 '반반'이었다. '방에 주방과 세탁실이 없다'는 기사들이 나왔는데, 청년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르고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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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서울 성북구의 리첸카운티관광호텔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한 ‘안암생활’ 내 공유 주방.

 

아이부키는 주거 관련 사회적기업이다. 201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임대아파트 내 유휴 공간을 작은도서관으로 재단장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래서 이름이 ‘아이부키’다.

 

2014년부터는 ‘사회주택’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 서울시 조례의 정의에 따르면, 사회주택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주거 관련 사회적경제 주체에 의해 공급되는 임대주택’이다. 민간과 공공이 협력해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만든 공공임대주택을 뜻한다. 아이부키는 서울 독산동에 홀몸 어르신을 위한 ‘보린주택(이웃과 이웃이 서로 돕는다는 뜻)’을 지었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적합한 주택을 만들고 SH공사가 매입했다. 금천구청은 보린주택에 들어갈 독거노인을 찾아 입주를 안내했다. 3자가 협력한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은 서울의 여러 지자체로 퍼져나갔다. 아이부키의 보린주택, 홍시주택(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등은 사회주택의 성공 사례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아이부키가 뜻하지 않게 ‘호텔 거지’ 논란에 휘말렸다. 얼마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호텔 리모델링 청년주택 ‘안암생활’을 선보였는데, 그 안암생활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업체가 아이부키다.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는 “전쟁터에서 맨 앞에 선 척후병 같은 느낌이 든다(웃음)”라고 말했다.

 

논란은 11월1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시작되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의 전월세 대책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곧 국토교통부가 발표할 것이다. 매입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을 LH, SH가 확보해서 전월세로 내놓는다든가, 오피스텔·상가 건물을 주택화해서 전월세로 내놓는다거나, 호텔 중에서 관광산업이 많이 위축돼 내놓는 경우가 있는데 호텔방을 주거용으로 바꿔 전월세로 내놓는 방안 등등이 포함돼 있는 걸로 알고 있다.”

 

11월19일 정부는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2022년까지 서울 3만5300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11만4100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빈 상가, 호텔 등을 고쳐 임대주택 1만3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게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정부의 전월세 대책 중 이 대목이 ‘표적’이 되었다. 여러 언론이 이낙연 대표의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발언 중에서 ‘매물 나온 호텔 고쳐 전월세 놓겠다’를 부각했다. 〈조선일보〉는 11월19일 사설(‘손님 없는 호텔 개조해 전세로’ 국민 울화까지 돋운다)까지 내놓았다. 내용은 이렇다. “전세 대책엔 LH 등 공기업이 코로나 사태로 타격 입은 호텔·상가·공장 등을 매입해 전·월셋집으로 개조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중략) 정부가 국민의 주거권 문제를 무슨 난민 수용소처럼 다루듯 대한다. 온라인에는 ‘벽도 얇은 호텔방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살란 말이냐’ ‘난 방직공장, 친구는 모텔에 살아요’라는 조롱 글이 올라오고 ‘호거(호텔 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국민의힘 송석준·하태경 의원 등도 ‘호텔 거지’ ‘닭장 집’ 같은 용어를 쓰며 비판했다.

 

그런데 “벽도 얇은 호텔방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살란 말이냐”라는 말은 애초부터 틀린 비판이다. 아이부키가 기획·운영하는 ‘안암생활’은 ‘민간 매입약정형 사회주택’으로 1인 청년 가구를 위한 사회주택이다. 당초부터 가족 단위로는 입주할 수 없는 시설. ‘2020 통계로 보는 1인 가구(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30.2%에 달한다. 1인 가구의 47.3%가 월세다. 특히 청년 세대의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 거주 문제는 여러 언론이 지적해왔던 터다.

 

안암생활은 청년 주거비 경감과 안정적 주거 지원을 위한 매입 공공임대주택이다. LH는 공모를 통해 사회주택 운영 경험이 많은 아이부키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아이부키는 이 사업을 3월부터 11월까지 8개월가량 준비했다.

 

호텔을 주택으로 바꾸어 공급하자는 이야기는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중국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정부는 2016년까지 한시적으로 용적률을 완화하는 등 호텔 신축을 독려했다. 그러다가 사드(THAAD) 사태 등으로 중국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호텔 과잉공급’ 상태가 되어버렸다. 2018년에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호텔과 업무용 빌딩을 주택으로 전환해 공급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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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주거 관련 사회적기업인 아이부키의 이광서 대표.

 


사회를 바꾸는 ‘공간의 힘’


그 당시 아이부키는 호텔을 주택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장벽이 있었다. 용적률 혜택을 받은 호텔이 주택으로 전환하려면 용적률을 낮추지 않고서는 용도변경이 불가능했다. 주차장 기준, 복도 폭 등을 주택 기준으로 맞추어야 했다. 당시의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이번에 ‘안암생활’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이부키가 검토한 호텔만 20여 개. 2012년에 준공해 비어 있던 서울 성북구의 리첸카운티관광호텔로 정했다. 다른 호텔에 비해 전환이 용이했다. 애초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인허가를 받아 세워졌고, 그걸 호텔로 바꾸어 운영을 해왔던 터라 다시 주택용으로 전환하는 게 비교적 쉬웠다.

 

LH가 이 호텔을 매입하고 아이부키가 위탁운영한다. 지하 3층, 지상 10층. 2층부터 주거공간이다. 원룸 122호다. 침대, 에어컨, 냉장고, 붙박이장이 ‘빌트인’으로 설치되어 있다. 호마다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이 있다. 각 방의 창문이 넓어서 무척 환했다. 공공임대주택이라 비용이나 주거 안정성도 괜찮은 편이다. 전용면적과 공용면적을 합해 공급면적 23㎡에 보증금 100만원, 월세 30만원이다. 주변 시세의 45% 수준이다. 2년 계약에 6년까지 거주가 가능하다. 지하 2개 층과 지상 1층은 공용공간이다. 공유 주방, 공동 세탁실, 공동 작업실, 회의실, (영상 제작을 할 수 있는) 미디어룸 등을 마련했다. 옥상에는 바비큐 시설이 되어 있는 ‘루프톱 라운지’를 마련했다.

 

12월1일 입주를 시작하면서 ‘안암생활’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취재진이 둘러본 안암생활 내부는 ‘호텔 거지’라는 용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자들이 실제로 와 보고 분위기가 ‘반반 정도’는 된 것 같다. 그 전에는 무조건 공격받았는데…(이광서 대표).” 안암생활이 공개된 이후에도 ‘방에 주방이 없고, 세탁실이 없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이광서 대표는 “청년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공유 주방에는 더 많은 조리기구가 비치되어 있고, 공동 세탁실 기기는 고성능으로 세탁·건조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공유’가 입주민들의 삶을 더 쾌적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엉뚱하게 ‘호텔 거지’ 논란으로 번졌지만, 이광서 대표는 안암생활을 통해 ‘사회주택’의 가능성을 말한다. “주택에도 공공과 민간 영역 말고 제3의 영역이 있다. 민간과 공공이 대안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 ‘공간의 힘’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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