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럼] 어마어마한 그림 가격의 비밀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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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 낙찰된 현대 회화 작품의 가격이 자주 이슈가 된다. 어린이 낙서같은 윌렘 드 쿠닝의 그림이 252억원에 낙찰됐다는 뉴스나 푸른색 캔바스에 흰 줄 하나 딸랑 그어놓은 바넷 뉴먼의 '원먼트Ⅵ(OnementⅥ)'가 소더비에서 480억원에 팔렸다는 뉴스에 네티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네티즌들은 초월적이며 장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감탄을 보내다가도 '만만해 보이는' 현대 회화의 어마어마한 가격에 대해서는 의심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눈에 띄는 노력을 칭송하는데는 익숙하지만 반대로 노력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현대'는 차곡차곡 쌓이는 노력에 대한 환상을 해체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현대의 그림들이다. 노력을 부정하는듯 보이는 현대 회화는 보통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준다. 세상이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력이라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안전하고 착한 세상을 기대하지만 실제로 세상은 훨씬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평생 착실히 살아도 이렇다할 보상을 얻지 못하고, 누군가는 아무런 노력 없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분명 제한된 영역에서는 노력이 보상으로 돌아오는 안정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학교 시험은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 그러나 더 많은 학생들의 공부 패턴을 관찰하게 되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어떤 경우는 노력과 보상의 원리가 전혀 반대로 작동하기도 한다. 노력이 부정되는 성공 사례를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노력은 개인의 영역이지만 보상은 외부에서 주어진다. 커다란 성공일수록 외부의 개입은 커지게 마련이어서 개인에 한정된 노력만으로 큰 성공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말해 노력으로 성취를 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긴밀하게 엮인 지점에 숟가락을 얹어놓으면 힘들이지 않고 큰 성취가 따라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우환의 붓질은 왜 수십억원의 가치를 가지는가. 그것이 엮인 지점을 보면 답이 보인다. 그 붓질이 들어가 있는 맥락을 읽어야 한다. 맥락과 상관없는 뛰어난 기술은 사람들의 경탄을 살 수는 있어도 가치는 없다. 작가들은 이심전심의 뛰어난 팀플레이를 통해 맥락을 창조하고 이어간다.

 

돈은 버는 것이지만 자본은 창조하는 것이다. 단위가 커질수록 더 긴밀해지고 더 많은 것과 연동된다. 결국 세상의 변화를 얼마나 민감하게 내면화시키느냐가 중요해진다. 세상의 큰 변화는 특정 개인이나 특정 사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임계상태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민감한 지점을 발견한 개인은 큰 변화를 촉발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다.

 

인류가 정교하게 엮여 있는 생태계를 인식해야 가격의 비밀을 알 수 있다. 인류 공동의 작업장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레고블록이나 이케아가 나올 수 있는 배경을 디자인한 것이다. 말레비치의 아무것도 없이 색면만 덩그러니 있는 캔바스와 스티브잡스의 아이폰이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사실을 봐야 한다.

 

연동되지 않는 것은 약한 구조를 가진다.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과 역행하는 어떤 시도도 큰 성공을 일구어낼 수 없다. 개인의 성공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국가의 권력구조도 마찬가지다. 신과 같이 무소불위의 통치자를 상정하는 권력은 개인의 초월적 노력에 의한 성공 스토리 만큼이나 시대에 뒤떨어져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것처럼 권위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을 추종하는 위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포지션을 선점하여 가치를 창조해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 이우환의 붓질이 수십 억이 아니라 수백 억이 못 되느냐고 반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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